“명절 앞둔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시장이 꽉 차야 하는데…귀성도 차례도 없는 ‘비대면’ 명절이 아쉽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훌쩍 다가왔다. 설날을 앞두고 찾은 전통시장은 명절 전 제수용품을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주말임에도 비교적 한산했다.
명태전을 뒤집고 떡국용 떡을 포장하면서도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상인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명절 분위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유지되면서 간소하게 명절을 보내는 가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악구 신원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조경선 씨(54)는 “주말 전 명절이면 원래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많아야 한다”며 “지난해 과일 작황이 좋지 않아 과일 가격도 3분의 1가량 오르면서 어려운 명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조 씨는 “통상 명절 전 주말에는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과일을 사 가는 손님이 많았는데 올해는 고향에 가는 사람이 없다”며 “5인 이상 집합금지로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거나 아예 지내지 않는 집도 많다”고 설명했다.
암사종합시장 과일 가게에서 일하는 전모 씨(29)도 “명절을 앞뒀다고 딱히 매출이 나아지지 않았다”며 “과일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 시장을 찾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로 사과나 배가 아닌 딸기가 매출 1위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통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대부분 집에서 명절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시 강동구에 사는 송모 씨(71)는 대구에 사는 언니와 ‘비대면’으로 설날 아침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영상통화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기 시작한 송 씨는 “기술이 좋아져서 서로 고생도 안 하고 좋지 않나”라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직접 얼굴 맞대고 할 얘기가 많긴 한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아이 손을 잡고 시장에 방문한 정모 씨(33)는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았다. 그는 “이번 설엔 근교 나가기도 무서워 집에 있으려 한다”며 “시장도 생각보다 많이 북적이지 않아 마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가족끼리 먹기 위해 명절 음식을 조금만 할 계획이다.
한껏 높아진 물가에 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많았다. 어머니와 함께 전통시장에 자주 방문한다는 박모 씨(27)는 “최근까진 물가가 올랐단 생각을 못 했는데 채소와 달걀 가격이 너무 올라서 놀랐다”며 “마트와 물가를 비교해봐도 시장이 1000원 차이는 기본으로 싸고, 깐 밤이나 깐 마늘처럼 인건비 들어가는 제품은 질도 더 좋아 시장으로 왔다”고 말했다.
한편 비대면 명절을 타개하기 위해 ‘비대면’ 장보기에 나선 시장도 있다. 서울시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은 2019년부터 네이버와 손잡고 ‘전통시장 장보기’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플랫폼이나 놀장 앱을 통해 주문ㆍ결제하면 상인들이 제품을 물류센터에 모으고, 배달기사들이 집 앞까지 배송해준다.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 전날까지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암사시장에서는 많은 상인이 바쁘게 비대면 물류센터를 오가고 있었다. 배송 수요가 높아지면서 처음 마련했던 물류센터 자리가 좁아져, 큰 사무실을 빌려 새로운 센터도 마련했다.
암사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김영주 씨는 비대면 장보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김 씨는 “매장 매출은 많이 줄었지만, 비대면 주문이 늘어나면서 매출을 많이 잡아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강동구를 넘어 서울 전 지역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
다만 김 씨는 “다들 행복한 명절 맞이하시면 좋겠다. 시장이란 원래 손님들이 북적북적해야 하는 곳”이라며 “얇아진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고 시장에서 많은 분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