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적개심을 표출한 건 "마스크를 써달라"고 말한 직후다. 지하철 내에서 마스크를 내린 채 통화를 하는 그를 보고 조심스레 마스크 착용을 권했다. 그는 "손으로 입을 막고 통화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따져 물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거리를 뒀다.
지하철이 멈추자 그가 내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렸다. 이리저리 날 끌고 다니며 "죽여버리겠다", "가만있어"라고 소리쳤다. 20분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온 지하철 직원들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 4호선 길음역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다 폭행을 당한 직장인 최수철(가명ㆍ40) 씨의 이야기다. 그는 폭행을 당한 뒤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폭행 피해자지만 가해자나 일부 경찰, 지하철 직원들은 최 씨를 '파파라치'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가 보디캠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씨는 그날 업무상 중요한 일이 있어 보디캠을 착용했다. 만약 증거 동영상이 없었다면 '쌍방폭행'으로 마무리될 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하철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된 지 약 9개월이 지났지만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민원이 접수될 뿐 아니라 폭행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16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마스크 미착용 신고 접수 건수는 8만2176건에 이른다. 하루 평균 623건이다. 월별로 살펴보면 △8월 2만3928건 △9월 1만7500건 △10월 1만3951건 △11월 1만4917건 △12월 1만1880건이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승객 가운데 일부는 폭행 가해자가 됐다. 지난해 5월 '마스크 미착용자 대중교통 탑승제한 마찰 사건'은 141건이 접수됐다. 이 중 폭행(상해)이 57건이다.
폭행 가해자들은 지하철 직원과 시민을 가리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서울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는 한 남성이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지하철 역무원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지난해 8월에는 2호선 당산역에서 50대 남성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승객의 목을 조르고, 슬리퍼로 얼굴을 가격하는 일도 벌어졌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하철 내 다툼이 많아졌다. 그러나 관리ㆍ감독에 책임이 있는 서울교통공사는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폭행 피해자 최 씨는 "4호선 타는 곳에서 소란이 일자 직원들이 왔지만 그냥 가라고만 했다"며 서울교통공사의 안일한 대처를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강하게 대응하고 싶지만 권한이 없어 난처할 때가 많다"며 "자칫 직원이 소송을 당하는 등 피해를 보는 일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