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3000만 원 vs 10억 원

입력 2021-01-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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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연 금융부 기자

3000만 원과 10억 원이 대결한다. 단위조차 다른 상대지만, 둘 다 원하는 목표는 같다. 이기는 것이다. 과연 누가 이길 확률이 높을까. 이들의 한판 승부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윗과 골리앗 같은 이 싸움은 금융감독원과 금융사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3000만 원과 10억 원은 각각 금융감독원과 금융사의 소송비용 차이다. 금융사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금감원은 소송에 허락된 최대 예산이 3000만 원이다. 이마저도 상향된 액수다. 한국은행 출연금, 금융사들의 감독분담금, 기타수입수수료 등으로 모이는 금감원의 재원은 금융위의 철저한 단속 아래 운영되고 있다.

금융사는 거대 로펌을 선임해 행정소송을 건다. 10억 원이라는 선임비용은 예시로 든 액수일 뿐, ‘우리 회장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몇 배에 달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형 로펌이 국정감사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증인 명단에서 배재시키는 데 ‘한 사람당 1억 원으로 통용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 나오는 걸 보니, 억 단위는 가뿐히 넘길 것으로 추측해볼 뿐이다.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금감원은 최근 금융사와 맞붙는 일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게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빚은 DLF(파생결합펀드) 관련 중징계에 대한 행정소송이다. 지난해 금감원은 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 임원들에게 중징계를 내렸고,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문책경고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즉시연금도 마찬가지다. 삼성생명 등 보험사들은 금감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보험사들은 하나같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했고, 금감원은 소비자에게 3000만 원을 지원했다. 최근 암보험 요양병원비 관련 삼성생명 중징계도 행정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소송이 잦아졌다는 지적에 대해 금감원 임원은 “그간 금감원은 안 한 게 아니라 피해 간 것일 뿐”이라며 “제재 이후 행정소송까지 염려해 강하게 제재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소송에 쓸 수 있는 액수가 적으니 소형 로펌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관심 밖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행정소송에서 승산이 낮다면 리스크가 따르니, 제재 수위를 고민하다가 낮춰버리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거대 로펌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만 봐도 그렇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재벌과 거대 로펌이 야합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소비자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금감원조차 거대 로펌의 세력을 의식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금감원이 그들을 우려하고, 무서워하는 순간 제대로 된 감독의 순기능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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