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창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대응은 이 전염병에 맞서 극복하려는 방역활동과 이 와중에도 교류하고 먹고 살아내야 하는 사회경제적 적응으로 나타난다. 21세기의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거리 두기와 백신의 빠른 개발과 보급이라는 방역의 혁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같은 국가경제의 새로운 시도도 당연한 것으로 적응하고 있다. 관행과 습관에 젖어 스스로 변화하여 적응하기를 주저한다면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수 없다.
방역을 강화하면 경제가 안 돌아가고, 경제를 앞세우면 방역이 소홀해져 경제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조정하는 게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어려운 문제는 다른 차원,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팬데믹 시대를 지나며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고 지속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이 자영업으로 생활하는데, 팬데믹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고, 개인 빚이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나라 빚은 안정되고 여유가 있으니 국가재정으로 자영업을 지원하고, 기본소득방식의 재난지원금으로 생활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팬데믹 시대에 적응하는 경제활동이다. 시대와 민심의 요청에 조응하지 못하는 관료의 기득권과 이를 넘어서지 못하는 정치는 무능이다. 팬데믹 시대, 우리 민주주의의 역량이다. 그래도 우리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고, 열린 논쟁을 하고 있다. 방역 정책과 행정에서는 K방역이라는 모델을 구축해가고 있다.
팬데믹은 사람들의 세상에만 있지 않다. 그리고 대상화된 존재들에게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계절에 따라 해마다 겪고 있는 가축전염병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는 닭, 칠면조, 야생조류에 나타나 확산도 빠르고 치명률도 높은 바이러스성 가축전염병이다. 감염된 조류에 밀착 접촉한 사람에게 감염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인체감염 사례는 없다. 감염의 경우도 벌에 쏘여 사망할 확률보다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겨울 처음 국내에서 발생한 이후 평균 격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2016년 겨울에는 38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 등 가금을 살처분하며 3600억 원의 재정을 썼다. 올겨울은 지난해 11월 26일 정읍의 한 오리농장에서 첫 발생한 후, 1월 23일까지 전국적으로 94개 농장에서 2000만 마리의 가금을 살처분했고 2500억 원 이상의 재정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는 산란계 3700마리를 기르는 산안마을이 있다. 50년 역사의 이곳은 우리나라 친환경 유정란 생산의 원조격인 동물복지형 공동체 농장이다. 한 달 전 1.8㎞ 떨어진 인근 농장에서 HPAI가 확진되며 다음 날 ‘예방적 살처분’ 명령서를 받았다. 2019년부터 강화된 HPAI 긴급행동지침으로 감염지역 반경 3㎞ 내의 가금류는 이틀 안에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을 하라는 행정명령이다. 산안마을농장은 ‘동물복지형 방역 선진화 농장’에 선정되어 경기도와 화성시의 지원을 받아 기존의 동물복지형 사육환경에 더해 사료 반입과 달걀 반출 위치 추적, 외부접촉 차단 등 선진적인 방역체계를 갖추고, 2018년 800m 인근 감염 시에도 피해 없이 지나갔다. 매일 검사가 이루어지고, 정밀검사도 음성, 잠복기도 이미 지났고 60만 개의 달걀이 적체되었지만, 화성시와 경기도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 재검토 의사에도 농식품부는 살처분 명령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예방적 살처분은 감염농장 살처분의 5배에 이른다. 농식품부는 달걀 수급에까지 문제가 생기자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아마도 2월 국회 농수산위에서 예방적 살처분의 과도한 가축방역행정에 대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보듯, 병원체의 차단과 면역보강(백신), 환경관리(거리 두기)가 고루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육환경의 개선이나 이미 확보하고 있는 가성비 좋은 백신은 미뤄두고 실적 위주의 살처분만으로 가축방역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 축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의 목적마저 무색하게 한다. 경제와 방역의 균형논리에도 맞지 않는 행정중심 논리이다. 선진국의 위상에 맞게 우리와 여건이 다른 특정 외국 사례에 기대지 말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축산정책을 우리 조건에서 검토해야 한다.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서 살아가는 길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를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