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윤종원 행장의 결단에 주목한다

입력 2021-01-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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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정치-관료-기업·은행-노조’

우리 경제구조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는 사슬관계다. 때론 이들이 비효율적으로 엮였을 경우 사달이 난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고,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이 그랬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변화의 계기가 됐다. 전자는 엄청난 국가적 재앙 속에서 정치적 역량을 통한 산업구조 개편의 시작을 알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제도개혁은 경제적 파탄에서 혹독한 구조조정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후자는 이른바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던 기업과 정권이 사슬을 끊는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첫 번째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해체다. 국정농단 세력과의 정경유착이 드러나 국회와 시민사회로부터 해체 요구에 시달렸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4대 그룹을 시작으로 회원사들이 잇따라 전경련을 탈퇴했다. 두 번째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이다. 지난해 5월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에서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결과적으로 정경유착의 사슬관계가 기업의 후퇴와 노동조합의 전진을 이뤄낸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눈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기업은행 노사는 2월과 3월 각각 김정훈, 이승재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를 앞두고 노조추천이사제 논의에 착수했다.

지난해 1월 윤종원 행장 취임 당시, 기업은행 노사는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윤 행장이 ‘낙하산 행장 반대’ 투쟁에 나선 노조를 달래기 위해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서다. 당시 윤 행장과 노조는 협상테이블에 앉아 ‘노사공동 선언문’에 함께 서명했는데, 여기에는 ‘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 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동이사제와 차이가 있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노동자(근로자)가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권·의결권을 갖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노조추천이사제는 근로자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다. 기업은행의 사외이사는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윤 행장이 제청한 뒤 금융위원장이 임명한다. 윤 행장의 결단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시장에는 노조추천이사제를 놓고 노조의 개입은 고유의 인사 경영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정치화된 노조가 더욱 자신들의 기득권만 강화시킬 것이라며 거부감을 보였다. 또 적대적 성향의 노사관계가 많은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노사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협력적 노사관계가 정착한 독일 등 유럽에서 발전한 제도라는 것이다. 회사 전체의 발전보다는 노동자의 이익만 내세워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KB금융이나 국책은행 등에서 지속적으로 무산됐던 이유다.

그러나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외이사 한 명이 다수의 이사로 구성되는 이사회에 참여하는 걸 두고 경영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적당히 대주주의 입장을 맞춰 주면서 고액의 보수를 챙겨 가는 사외이사들이 많은 현실에서 독립성 확보에 긍정적인 면이 많다.

여기에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노사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노사가 경영 정보와 의사결정의 판단 근거를 공유하게 되면 소모적인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영 현안에 함께 책임을 지게 되면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초래된 사모펀드 사태를 비롯해 채용비리, 셀프연임 논란 등 금융권에서는 경영진의 전횡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사실상 경영진의 견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한 열린 자세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선진화된 제도라도 문화적 토양이 맞지 않으면 뿌리내리기 어렵다. 노조에게도 당부한다. 타협보다는 파업 등 실력 행사로 문제를 해결하는 적대적 노조문화는 선진화된 제도 도입을 가로막는 문제를 초래한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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