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는 그만큼 감성적이다. 한 회사의 얼굴이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의 붉은 타원형 로고가 바뀌었다. 1월 6일 움직임(Movement that inspires)을 주제로 한 새로운 로고<사진>가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 부착되기 시작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1999년 기아차를 인수하면서부터 로고와 사명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내실은 완전히 바꿔놓았다. 품질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업문화도 일신했다. 기아차는 현대차가 다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이 바뀌면 옛 주인은 잊힌다. 로고까지 바뀌면 과거의 기아차는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정의선 신임 회장이 역사를 소환했다. 그는 취임 인사에서 기아자동차의 창업자 김철호 회장(1905~1973)을 언급하며 각별한 고마움을 표했다.
김철호가 누구인가? 어린 나이에 배가 고파서 간 일본에서 그는 볼트와 너트를 가공하는 회사의 사장이 됐다. 돈을 꽤 모은 그는 귀국해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를 세웠다. 그때 만든 ‘3000리 자전거’가 지금의 삼천리 자전거이고 그때 만든 기아산업이 지금의 기아자동차가 됐다. 1973년 6월에는 일관공정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최초의 현대식 공장을 세웠다. 지금의 기아 소하리 공장이다. 이 모든 역사는 김철호가 1944년 귀국해 만든 경성정공에서 시작된다. 19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보다 역사가 길다. 업종 전문화의 상징으로, 소유경영 분리의 대표적 기업으로 꼽혀 재벌을 비난할 때면 그 대척점에 꼭 기아차가 있었다. 전경련 회원이면서 다른 회원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가장 격렬히 반대했던 회사였다.
정의선이 소환한 역사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김철호의 기아차는 현대, 대우, 쌍용 등 자신보다 덩치가 큰 대기업과 늘 경쟁했다. 그래서 혁신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한국 최초의 컨버터블 로드스터 ‘엘란’이나 세계 최초의 도심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스포티지’처럼 끊임없이 두드리고 도전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은 가혹했으되 그로 인해 혁신은 끊임없이 이뤄졌다. 차별도 받았다. 전두환 정부 때는 아예 승용차를 생산하지 못했다. 강제적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때문이었다. 그러자 승합차 ‘봉고’를 개발해 공전의 대히트를 쳤다. 이 또한 혁신의 선물이었다.
정의선 회장은 청운동 정주영 회장 자택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2018년 수석부회장에 오른 뒤에도 정문과 로비로 출근하지 않았다. 1층은 아버지가 다니는 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자신을 낮추면서 아버지를 따랐다. 그러나 항상 정장을 차려입었던 아버지와 달리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짧은 머리 모양으로 신차 발표회에 나오기도 했다. 변화의 메시지였다. 디자인 경영과 파격 보증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변화의 실행이었다. 현대·기아차는 이를 통해 위기를 이겨내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새해 벽두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은 거침없는 변신을 예고했다. 세계 몇 위의 생산량에 매출액 얼마라는 계량적 목표보다 인류, 행복, 미래라는 움직임(movement)을 제시했다. 변화의 중심점에 선 젊은 총수는 역사를 소환하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관통하는 동력으로 혁신을 선택했다. 몇 년 전 키웨스트에서의 낯선 경험이 혁신으로 융합되어 현대차의 미래로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