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메르켈 체제'의 윤곽을 드러낼 독일 여당 기독민주당(CDU)의 대표에 중도 성향의 아르민 라셰트(59)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가 선출됐다.
그동안 독일에서는 기민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지, '우클릭' 회귀할지가 쟁점이었는데, 당원들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1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기민당은 이날 당 대회를 열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지를 받던 라셰트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당 대표 선거 직전 "원맨쇼가 아닌 팀의 주장을"이라고 호소한 라셰트는 '반 메르켈 보수파'인 프리드리히 메르츠(65) 전 원내대표와 외교 정책에 능통한 노르베르트(55) 뢰트겐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을 꺾고, 당 대표로 새롭게 취임하게 됐다.
각 지방 대표자들의 1차 투표에서는 메르츠가 근소하게 앞섰으나, 결선투표에서 결과가 뒤집힌 것으로 전해졌다. 결선 투표에서는 라셰트가 521표를, 메르츠가 466표를 각각 획득했다.
라셰트 당 대표 취임은 곧 메르켈 시대의 연장선을 의미한다. 기민당은 애초 중도우파 정당이지만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탈원전, 최저임금 도입 등 비교적 좌 편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왔고, 라셰트는 이러한 메르켈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에 메르켈과 가까운 당 간부가 잇달아 그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고, 독일 내 인구가 가장 많은 주 총리로서의 실적을 강조해 안정을 추구하는 당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게 됐다.
이번 당 대표 선거 승리로 라셰트는 차기 총리 자리에 크게 다가서게 됐다. 독일은 오는 9월 총선 이후 16년째 집권 중인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을 새 총리 선출을 앞두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2021년 가을 정계 은퇴를 표명한 상태에서 차기 총리 자리를 둔 경쟁은 라셰트를 중심으로 진행되게 됐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기민당의 정당 지지율이 35∼37%로 사회민주당(SPD)이나 녹색당, 좌파당 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라셰트에게 차기 총리 자리가 자동으로 굴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교섭단체 내 총리 후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자민당은 남부 바이에른주 기반의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당(SCU)과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어서 양당의 협의를 거쳐 차기 연방의회 선거에 출마할 총리 후보를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