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발생한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16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재판장 이성호 부장판사)는 13일 피해자 최모(36) 씨와 가족이 정부와 당시 수사담당 형사, 진범을 불기소 처분한 검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한민국이 최 씨에게 13억9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또 최 씨의 어머니에게 2억 5000만 원, 동생에게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체 배상금 가운데 20%는 최 씨를 강압 수사했던 경찰관 이모 씨와 이후 진범으로 밝혀진 용의자를 불기소 처분한 검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최 씨가 받아야 할 배상금이 20억 원이고, 이에 더해 구속 기간에 얻지 못한 수익 1억여 원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미 최 씨가 형사보상금으로 8억4000만 원가량을 받기로 결정된 점을 고려해 13억여 원을 배상금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영장 없이 최 씨를 여관에 불법 구급한 상태에서 폭행하고 범인으로 몰아세워 임의성 없는 자백 진술을 받아냈다"며 "최 씨를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로 수시로 폭행하고 폭언하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최 씨의 허위자백 외에는 객관적으로 부합하는 증거가 없음에도 오히려 증거들에 끼워 맞춰 자백을 일치시키도록 유도해 증거를 만드는 등 사회적 약자로서 무고한 최 씨에게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당시 담당 검사에 대해서도 "진범의 자백 진술이 신빙성이 있고 다른 증거들과도 부합해 구속수사하는 게 상당했는데도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고 무익하거나 부적절한 수사 지휘를 반복했다"며 "경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못하도록 지휘해 사건의 진상이 장기간 은폐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 씨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최 씨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재심 절차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 사유가 있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최 씨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제기돼 대한민국과 소속 공무원인 형사와 검사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은 2000년 8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앞길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다방에서 배달 일을 하던 16세 소년 최 씨는 경찰의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했고 재판에 넘겨져 결국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경찰은 최 씨가 복역 중이던 2003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재조사에 착수했다. 임모 씨는 "사건 당일 친구 김 씨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 범행을 저질렀다"며 "자신이 칼을 숨겨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진범 김 씨를 조사해 자백을 받아내고 임 씨와 함께 강도살인, 범인은닉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이를 반려하고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이후 두 사람이 진술을 번복하면서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만기 출소한 최 씨는 2013년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11월 "피고인이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 씨가 무죄 판결을 받자 경찰은 김 씨를 다시 체포했고, 이후 김 씨는 유죄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최 씨의 법률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개인의 인권을 찾아주고 무죄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도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