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아스트라제네카 2000만 회, 모더나 4000만 회, 코백스퍼실리티 2000만 회, 화이자 2000만 회, 얀센 600만 회분을 합하여 총 1억600만 회분을 확보한 것으로 질병관리청은 발표하였다. 도입 시기는 영국 옥스퍼드대학팀의 아스트라제네카가 올해 1분기, 얀센과 모더나는 2분기, 화이자는 3분기로 예정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접종은 일러야 2월 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 국민의 60% 수준이 되어야 집단방역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일러도 올해 2분기가 끝나는 7월이 되어서야 제한적이나마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이 지난달 8일, 미국이 그다음 주인 14일 첫 접종을 시작하였다.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들이 일찌감치 방역에 필요한 백신을 확보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백신 확보와 실제 접종은 늦어도 많이 늦은 것으로 보인다. 검사-추적-치료의 3박자 방역체제를 자랑하던 K방역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의 행동주의 의사결정론에 따르면 지나친 자신감은 미래의 사건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게 하여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K방역 성과에 대한 자신감과 국내산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대한 오만으로 결국 화이자, 모더나 등 백신 개발 회사의 공급 계약 제안을 무시하였다. 여기에 지난번 사스 당시 도입한 백신 잉여분에 대한 감사원의 질책이 공무원의 보신주의를 부추겨 이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제도적 이유에 방역에 대한 당국의 지나친 자신감이 더하여진 결과라 해석된다.
한편, 경제활동의 자유를 이유로 제한적 방역만을 추진한 결과 코로나의 창궐을 막지 못한 미국을 비롯해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지난달 말 우리의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대일 때 미국은 평균 23만 명, 영국 3만4000명, 독일은 2만5000명의 확진자를 내었고 일본마저 2800명대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적극적으로 백신 도입에 나서면서 일찌감치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것은 반대의 예가 된다. 자신감 부족이 코로나 리스크를 크게 인식하게 되면서 백신 도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도입 계약을 서둘러 체결하면서 미국 및 유럽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중국 및 러시아산 백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코백스의 접종을 권장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백신 도입 지연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애초에 도입 비용을 고려하느라 늦어졌다고 하다가 이제는 “결코 늦지 않았다”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구제로 나간 4차에 걸친 추경 비용을 고려해보면 정부의 이런 답변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2030세대의 실망과 검찰개혁, 공수처 이슈로 혼란에 빠진 정국을 덮어주는 유일한 정책이었던 K방역이 역설적이게도 이번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동안 K방역으로 4·13 총선의 압도적 승리와 정책 이슈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성공해왔던 현 집권당으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사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백신 도입은 늦었지만 접종을 빨리 시행할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효율적 해결책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보건당국(NHS)의 승인을 받아 1월 4일 첫 접종이 이루어졌고 인도에서도 6일 시작했다고 한다. 많이 늦었지만 먼저 도입할 예정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원료물질에 대한 우리 보건당국의 승인절차를 신속히 마무리 짓고 후속 백신의 조기 도입과 접종을 추진하여, 집단면역 수준을 앞당겨 확보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