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공정채용을 가로막는 것들

입력 2021-01-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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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JTBC 드라마 ‘H.U.S.H’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현재까지 드라마의 주요 내용은 기업 채용 불공정 취재와 인턴 여기자의 자살을 둘러싼 언론사 구성원의 이야기로 흐르고 있다. 자살 원인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턴 동기들과 달리 정규직 입사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중앙일간지 기자라는 꿈이 실현될 수 없는 현실을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2~3%대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시청하는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3년 전 필자는 금융과 언론 분야에서 청년층 공정채용 현황과 개선방안이라는 정부 연구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를 진행하면서 파악한 언론과 금융권 공정채용 현실이 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도 연구 중 만난 지방 국립대 출신 여성 구직자와 드라마 속 인턴기자가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여성은 중앙언론사 입사를 위해 3년간 기사 작성, 취재, 인턴경력, 서울에서 언론고시 스터디, 중앙일간지 출신이 교수로 있는 학교에서의 청강 등 온갖 노력을 해왔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에게 들려준 “서울 중앙일간지에서 지방은 언론의 변방”이라는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금융사과 언론사는 대부분 민간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공공기관처럼 인식되어 있다. 다른 민간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채용 공정성이 요구된다. 국민 정서와 괴리된 채용구조는 국가, 기업,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연구결과 서울 중앙일간지에 지방대생이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드라마에서도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지방에서 그렇게 유명한 대학 출신이면 지역신문 기자 하면 되겠네.” 또 “매일한국에 지방대 출신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솔직히 내가 알기론 없는 것 같은데”라고 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중앙일간지가 지방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압권은 “취재원 앞에 그런 기자가 있으면 취재원이 어떻게 보겠니”라는 편집국장의 대사이다. 중앙일간지들의 언론 정보 공공성과 공신력 획득이 바로 서울 중심의 학맥 카르텔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은 자신들보다 뛰어난 학벌을 가진 사람한테 진실을 말할 것이라는 선입견의 은유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선입견을 편집국장의 입으로 확인시켜 준다.

드라마에서 부정 채용청탁 기업이 은행권은 아니지만 청년 구직자들의 은행 입사를 위한 공정채용 열망은 상상 이상이다. 은행권 근속 연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짧아지고 있음에도 청년 구직자에게 인기가 높은 이유는 순전히 근로조건 때문이다. 1990년대 필자가 구직자 시절 응시한 은행은 3급 공무원, 영관급 군인, 대기업 이사 이상 친척을 입사지원서 쓰게 했다. 요즘 보면 불공정 채용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정보를 작성하게 한 것이다. 금융 영업이 기득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우리나라 관제금융 역사에 기인한 채용방식이었다.

MBC 시사프로그램 보도에 따르면 현재 채용비리로 재판 중인 은행은 법정에서 “점수 순서로만 합격자를 정하면 SKY 출신자들이 부족해 대학별 균형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중의적 의미이다. 은행 경영이 여전히 서울 중심의 학벌 인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조직 구성원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조직 구성원은 최소한 자신과 동질적인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조직의 미래를 안정감 있게 가지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 비율이 무너지면 조직과 기관의 명성이 쇠퇴한 것으로 간주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된 채용 공정성은 블라인드 채용 같은 절차상의 투명성과 합리성보다 지방을 변두리화하는 서울 중심의 경제, 정치구조와 학벌 카르텔 해결 없이는 요원하다. 공정채용은 기업의 이윤을 창출시킬 인재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기업이 국민과 함께 성장 발전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경영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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