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강세장’의 단맛에 취한 그는 말한다. “미국 주식 투자 시작했더니 한국 주식 투자 시시해서 못하겠어요”
실제 올해 미국 증시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표적 수혜주인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주가는 올해 들어 780% 폭등했다. 테슬라 주가 상승폭이 월등했지만 다른 종목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엣시(Esty)가 올 들어 지금까지 284%, 클라우드 커뮤니케이션업체 트윌리오(Twilio)가 272.5% 폭등하는 등 세 자릿수 상승률이 속출했다.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등 대표적 기술주들도 각각 78%, 71%, 61% 치솟았다. 몇 달이 지나도 수익률이 제자리걸음인 한국 종목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해외주식 직구에 나선 국내 투자자인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사랑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서학개미는 테슬라,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형 IT주를 쓸어 담았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 포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8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매수 금액은 1028억2860만 달러(약 113조4000억 원)로 지난해 217억4825만 달러의 5배 수준으로 늘었다.
그 중 8월 말 기준 서학개미들이 보유한 테슬라 주식은 36억4785만 달러어치로 테슬라 10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 기세는 이후에도 계속돼 10월 26일에는 40억3564만 달러로 두 달 새 4000억 원가량 급증했다.
서학개미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테슬라는 현재 시가총액 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도요타를 비롯해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FCA), 푸조시트로엥그룹(PSA) 등 전 세계 6개 자동차 업체의 시총을 합친 것보다 많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연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미국 증시 폭락장을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계속 주식을 사들였다.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폭등에다 저금리 환경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도 투자자들이 알파 수익을 찾아 기꺼이 국경을 넘도록 만들었다.
특히 미국 개인투자자 ‘로빈후더’들의 글로벌 입지가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을 자극한 면도 있다. 서학개미가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한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7월 하루에만 로빈후드 계정 4만여 개가 4시간 동안 테슬라 주식을 집중 매수, 주가를 16% 띄우며 파워를 과시한 바 있다.
서학개미들의 테슬라 지분이 1%에 육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움직임이 파급 효과를 일으킬 여지는 충분하다. 이는 마치 2017년 한국 정부의 투자 규제 직전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했던 ‘김치 프리미엄’이 증시에서 재현되는 꼴이다.
한편 점점 자극적인 투자 경향이 강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스몰캡과 파생상품에 눈을 돌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시총이 적은 기업을 뜻하는 스몰캡 투자는 주가가 비교적 싸기 때문에 대형주에 비해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문턱이 낮은 이점이 있다. 그러나 스몰캡은 대형주나 중형주에 비해 주가가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변동성이 큰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주가 조작에도 취약한 게 현실이다. 이에 정부도 공매도 금지 조치 등 규제 카드를 꺼내고 있다.
여전히 내년 백신 접종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 지원사격이 떠받치는 강세장 속에서 서학개미들의 주식 쓸어 담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