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씨티·신한은행 “키코 소송기업엔 보상 없다”…규모·대상 ‘깜깜’

입력 2020-1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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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책임 없지만 中企 고통 감안”
금감원 배상 압박에 자율보상 택해
분쟁조정 4곳 제외…금액도 비공개
“피해 기업 간 갈등 야기” 우려도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환헤지 통화옵션상품) 사태가 은행들의 보상으로 12년 만에 일단락 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결과가 나온 지 1년 만이다. 최근 한국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당초 입장을 번복하고 키코 피배 보상에 나서기로 했다. 키코 보상에 대한 윤석헌 금감원장의 의지와 시중은행들의 분위기 반전이 겹치면서 하나은행, 대구은행 등 나머지 은행들도 보상에 나설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다만, 보상 규모는 베일에 싸여 깜깜이 보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배상 대신 보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참여하지 않는 점 등 미완의 보상이라는 오명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2년 만에 매듭짓는 키코사태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분쟁 자율조정을 위한 은행협의체에 참여한 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보상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다른 은행들도 보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최근 한국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키코 피해기업 일부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법률적 책임은 없지만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차원이다.

하나은행과 대구은행도 내부적으로 키코 피해를 입은 기업에 보상하는 기준과 방안을 놓고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씨티·신한이 입장을 바꾸면서 하나은행과 대구은행도 부담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1년 가까이 지지부진하던 키코 보상이 갑자기 속도를 내고 있는것은 윤 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윤 원장은 유명순 씨티은행장을 만나 직접 키코 보상을 당부하기도 했다. 줄곧 키코를 맡아온 김철웅 분쟁조정2국장이 소비자담당 임원으로 승진한 것도 키코 보상에 대한 윤 원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키코 사태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배상 아닌 보상 △보상규모와 리스트 비공개 △비소송기업에 한정 등 한계점은 분명하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관계자 “은행들이 보상을 한다고 하는 분위기인데 대상기업들 리스트 제공을 거부있는 만큼 ‘깜깜이 보상’에 그칠 수 있다”며 “어느 기업에 얼마를 보상할 것인지 그리고 보상금액 협상은 공정했는지 등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씨티·신한은행은 금감원의 배상 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에 대해서는 보상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 분쟁조정을 신청했던 기업은 해당이 안 되고 자율조정 대상 기업 중에서 보상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키코 피해자 중에 비소송 기업에 대해서만 보상을 하는 것은 키코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소송기업과 비소송기업을 나누는 건 키코 피해기업 간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중소기업 900여 곳, 피해규모만 3조 원

키코사태는 2008년 잘나가던 국내 수출중소기업들에 큰 손실을 안겨준 악몽 같은 사건이다. 당시 900여 개의 중소기업이 피해를 봤고, 손실액만 3조 원이 넘었다. 그러나 피해보상은 없었다.

키코는 국내 은행들이 수출 위주의 중소기업들에 판매하기 시작한 환헤지 통화 옵션 상품이다. 수출 기업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여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환율이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게 될 때가 문제였다.

만약 만기 이전에 환율이 한 번이라도 정해진 범위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기업들은 계약 금액의 두 배 이상의 외화를 마련해 은행에 약정 환율로 팔아야 했다. 만약 환율이 정해진 범위 밑으로 떨어진다면 키코 계약은 무효가 된다. 키코는 상품 구조가 복잡한 데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파생상품이었지만 당시 은행들은 이 상품을 중소기업들에 ‘환헤지 상품’이라며 가입을 권유했다. 상대적으로 금융 인프라가 부족했던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의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말에 키코 상품에 대거 가입했다. 손실 가능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2008년 은행들은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상품을 판매했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치솟았다. 탄탄한 수출 중소기업이 쓰러졌고 피해 기업만 919개, 손실액은 3조1588억 원에 달했다. 결국 100여 개의 키코 피해 기업들로 구성된 키코 공대위가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면서 5년간의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2013년 9월 대법원은 “키코는 불공정 거래 행위가 아니다”고 확정하며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3대 적폐로 지목 ‘키코 보상’ 급물살

키코 사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7년, 더불어민주당이 키코를 ‘금융 3대 적폐’로 지목하면서다. 당시 금융위원장 직속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키코 재조사와 피해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라’고 권고했다. 키코 재조사는 2018년 5월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윤석헌 원장이 금감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속도를 냈다. 윤 원장은 취임 후 분쟁조정2국 내에 ‘키코 분쟁조정전담팀’을 구성했다. 이후 키코 공대위를 만나 피해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방안과 분쟁 조정을 약속했다. 키코 공대위는 피해 입증이 가능한 4개 기업(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에 대해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 원 △우리은행 42억 원 △산업은행 28억 원 △하나은행 18억 원 △대구은행 11억 원 △씨티은행 6억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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