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수능은 코로나19로 인해 역대 최고의 결시율을 보였다. 수시모집에서 소위 ‘깔아주는 자’의 불참은 한 개의 문제로도 수능 등급 변동 폭을 커지게 해 수험생들의 수능 최저등급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수능 점수가 낮거나 이미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들의 불참으로 중위권 이상 수험생들이 위협받게 되었다. 수능 점수가 낮은 수험생들의 불참에 대한 일부 수험생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평소에 능력 없는 수험생으로 여겨졌던 이들은 불참으로 자신들의 존재감과 소중함을 일반인들에게 알렸다. 결국 과거 중위권 이상 수험생들의 안정적 최저등급 확보는 이들 ‘깔아주는’자의 배려(?) 덕택으로 얻은 성과였던 셈이다.
기업의 인사고과나 수능 상대평가는 자영업자 간 경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영업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대표적 완전경쟁 시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자영업자 간 경쟁은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 질은 높아져 좋은 일이지만, 자영업자 입장에서 경쟁의 결과가 독점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수익성은 나쁠 수밖에 없다. 포화된 자영업자의 안정적 수익을 위해서는 ‘깔아주는 자’의 존재도 필요 없다. 높은 수익성은 오직 경쟁을 포기한 자의 증가, 충분한 유효소비자 확보가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 서로가 포기하지 않고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할수록 소수 자영업자를 제외한 대다수 자영업자들의 제 살 깎아 먹는 출혈을 막을 방법은 없다.
경쟁에 대한 부담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곳이 프로스포츠 분야이다. 구단 선수 연봉의 총액을 정하는 샐러리캡이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구단 간 선수연봉 경쟁을 진정시키고 전체 구단의 질 높은 경기 보장을 위한 제도이다. 선수들이 자신의 최저 연봉을 감수하거나 양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선수 간, 구단 간 무한경쟁을 막지 않으면 1·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취소하지 않았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가 샐러리캡 제도에 반발한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무산된 1994년처럼 열리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널드 잉겔하트(Ronald Inglehart)는 사람들이 생존이 불안하면 예측력을 최대화하고자 다양성과 변화보다는 전통과 규범을 고수한다고 말한다. 이를 기업과 개인에 대입하면 지나친 경쟁으로 개인과 자영업자, 기업의 존재가 불안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와 대응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경쟁에 뒤처진 나의 동료,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익명의 존재가 나의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들은 결코 ‘루저’나 낙오자가 아닌 자신의 재능, 능력 같은 자원 가치를 포기하거나 양보한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보상이 어쩌면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Myles Dworkin)이 정의한 복지개념일 것이다.
연말에 ‘깔아준’자에 대한 고마움, 소중함, 그리고 보답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