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이 폭등하고 있다. 평생 성실히 일해도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할 거라는 푸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누구는 영끌 갭투자를 한다지만 상당수 빚을 낼 용기가 없는 서민들은 냉가슴만 앓고 있다.
주식 시장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엉망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동학개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들은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까지 바꿔 버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주식 보유액 기준이 2021년부터 한 종목당 3억 원으로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8만 명가량에 불과하다.
9983. 중소기업을 나타내는 지표다. 전체 기업 수의 99%, 종사자의 83%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13만9000원(사업체 노동력조사 기준)이다. 한 달에 300만 원. 1년에 4000만 원이 안 된다. 월급쟁이들이 한 달에 얼마나 저축을 할 수 있을까. 받는 월급 중 무려 절반을 저축한다고 해도 1년에 기껏해야 20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3억 원을 만들려면 무려 15년 이상이 걸린다.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다. KB국민은행 부동산 리브온의 ‘월간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10월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전월(5억9815만 원) 대비 640만 원 오른 6억455만 원으로 조사됐다. 30년을 일하고 월급의 절반을 저축해도 아파트 하나 사지 못한다는 뜻이다.
과연 3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3억 원’, ‘6억 원’, ‘30년’. 모두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월급의 절반을 매달 저축한다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다.
2020년 대한민국, 누군가는 한 종목당 3억 원이라는 주식 양도세 기준이 너무 과하다고 생떼를 쓰는데, 누군가는 아기 기저귀를 사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시세 12억 원짜리 아파트, 10년 뒤 보유세 651만 원을 낸다고 난리를 치지만 누군가는 생리대가 없어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
새벽 4시,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박스 테이프를 뜯고 있다. 편의점 앞에선 두 어르신이 빈 병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말이 거칠어지기 일쑤다.
라이더유니온에서 근무하는 A 씨는 페이스북에서 “사망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라이더의 가족이 상담 전화가 왔을 때, 저는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썼느냐고 먼저 물어봅니다. 이럴 때마다 자괴감이 듭니다. 일하다 다친 조합원이 휴업 급여를 얼마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안내합니다. 그러면 조합원들이 웃으며 깁스를 한 채 일해야겠다고 말합니다”라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은 어떠한가.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을 내보내고 홀로 하루 14시간씩 일해도 임대료 내는 것조차 벅차다. 실제 성신여대 근처에서 15년 넘게 커피숍을 하던 A 씨는 비싼 임대료에 기존보다 절반 크기의 가게로 옮겨야만 했다. 지난달 11년 가까이 대방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던 70대 할아버지는 건물주의 느닷없는 통보에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남은 쿠폰 있으니 다 쓰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이처럼 현실은 가혹한데 수억 원 자산을 가진 이들은 세금을 못 내겠다고 몽니를 부린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겨울이 오고 있다. TV홈쇼핑에선 이미 겨울옷과 난방 기기들이 넘쳐난다. “이번 겨울은 여느 때보다 더 춥다”는 설명과 함께.
그런데 이 세상이 날씨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