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에 적발된 보험사기 사례 중에는 자동차 부품업체와 정비업체가 조직적으로 공모해 보험금을 편취한 사건도 있다. 외제차 부품업체가 정비업체에 공급하지 않은 부품을 공급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11개 손해보험사로부터 약 11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것이다.
보험설계사와 병원, 소비자가 함께 짜고 보험사기로 8억5000만 원을 편취한 사례도 있다. 보험설계사 등 브로커를 통해 실손보험 가입 환자를 유치한 뒤 진료비를 부풀린 가짜 영수증을 발급해 환자가 지급받은 실손보험금을 돌려받은 산부인과병원 관계자와 보험모집인 등이 적발됐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보험사기가 알게 모르게 만연해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적발한 보험사기 금액은 전년 대비 10.4% 증가한 8809억 원, 가담 인원은 전년 대비 16.9% 증가한 9만2538명으로, 적발금액·인원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보험사기가 늘어나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에 누수가 생기고 민간보험사들도 손해율이 높아져 경영상황이 나빠지게 된다. 이는 건강보험 가입자들과 민간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거의 전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지난 5월 보험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공·사보험 재정누수 규모 산출 및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사기로 누수되는 금액은 연간 6조1513억 원(2018년 기준)에 달한다. 이로 인해 연평균 1가구당 30만 원, 1인당 약 12만 원의 보험금을 더 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쯤 되면 보험사기를 근절하는 데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부터 시행 중인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은 형법상 사기죄와는 별도의 보험사기죄를 신설해 처벌 수준을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그런데도 보험사기는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보험사기로 적발된 보험모집 종사자는 1600명, 병원 종사자는 1233명, 정비업소 종사자는 1071명에 이른다. 특히 보험모집 종사자의 경우 2017년보다 51.6%나 급증해 심각한 상황이다.
보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불법행위는 선량한 일반 보험계약자들에게 범죄를 확산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그 폐해가 매우 크다.
따라서 보험업계 종사자나 보험산업 관련 종사자의 보험사기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대폭 강화해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 공영보험과 민영보험 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보험사기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법적 근거가 부족해 보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환자는 허위입원 등을 통해 비급여를 보험사로 청구하고, 의료기관은 급여를 건보공단에 청구하는 등 공·민영 보험사기가 동시에 발생하는데도, 민영보험사와 건보공단 사이에 이런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있다. 제도가 미비하다 보니 기관별로 따로 조사를 하는 등 조사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유관 공공기관과 보험사에 대한 자료 제공 요청권을 부여해 공·민영 보험 정보 교류 근거를 마련하면 보험사기 적발이 훨씬 성과를 내지 않을까 싶다.
20대 국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이 8건 발의됐지만 1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다행히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보험산업 관련 종사자 처벌 강화,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기관 자료 제공 요청권 등을 규정한 보험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윤창현 의원도 보험사기로 확정판결을 받은 자에게 이미 지급받은 보험금을 반환할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해 6조 원에 이르는 보험사의 보험사기 피해와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를 고려할 때 보험사기특별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법 개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래야 보험의 재정 건전성이 회복돼 선량한 다수 소비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