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개척하는 혁신벤처가 없는 것인가? 그 이유는 실패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혁신 창업은 고위험의 모험사업으로,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이다. 특히,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미래 기술일수록 시장 기회가 불확실해 실패의 위험이 크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벤처창업도 후발자 전략을 선택해 현재의 기술을 사업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위험도가 낮은 안전한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 번 실패한 경우 재창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업이란 노동과 자본에 인생을 거는 도박이다. 한 번 시도해 성공하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실패비용이 과도해 한 번에 성공하지 않으면 재창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막대한 부채와 체납 세금이 발생한다. 회사 정리에도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연대보증은 족쇄 역할을 해 실패 기업인을 신용불량자로 전락시킨다. 법원에서 파산면책을 받는 것도 시간이 걸리며 까다롭다. 회사를 운영하지 않고 파산면책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 설비와 자산의 가치가 급락해 헐값으로 처분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관행도 혁신기업의 실패를 조장하고 재창업을 억제한다. 자금력이 취약한 창업 기업은 환경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경기침체나 전염병과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일시적 경영 애로로 유동성 부족에 빠진다. 이런 경우에 금융권에서는 리스크 관리를 내세워 융자금을 회수하려 든다. 비 올 때 우산을 걷어가는 관행이 여전히 팽배하다. 실패한 기업인이 금융기관에서 재창업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증기관도 이전에 상환하지 못한 보증서가 기록에 남아 재창업에 대한 보증을 기피한다. 과거의 실패 이력이 낙인으로 남아 재창업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이중처벌의 멍에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이처럼 척박한 창업환경과 제도적 한계는 실패의 비용을 극대화해 사업 실패가 인생 파산으로 직결된다. 이런 이유로 재창업가는 기술사업보다 소상공인으로 시작한다. 생계형 창업에 불과한 소상공인 수준의 재도전에서 혁신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편견도 재창업 기업인에 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우리 사회에는 창업에 대한 모순된 시각이 혼재한다. 한편으로는 창업을 장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창업을 억제한다. 그런데 재창업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부정적이다. 실패 이력이 낙인찍힌 재창업가와는 누구도 거래하려 하지 않는다. 정부도 재기 도전에 대한 지원을 성장정책보다 복지정책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래서 재창업 지원이 원론적 수준을 넘어 제도 개선의 각론에 들어가면 온통 걸림돌투성이다.
실패 기업인의 재도약을 장려하려면 우선 실패비용이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 사업이 부진해 어려움에 처한 창업기업에 사업전환과 기업회생에 관한 교육과 컨설팅이 강화돼야 한다. 기업회생 절차와 워크아웃 프로세스도 개선해 회생 가능성이 큰 기업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관행도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신용불량 정보의 공유를 제한하고 일정 기간 이후에는 삭제하는 정책을 추진해 낙인효과를 완화해야 한다.
재창업에 대한 자금 지원도 융자에서 투자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태펀드에 재도전펀드를 설립해 혁신기술의 재창업가에게 상환의무에서 자유로운 자금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2014년 창업지원법에 재창업을 지원하는 조항이 포함돼 재도전 지원제도가 수립됐으나 아직 불충분하다. 성실 실패자의 재도전에 대한 신용회복, 조세 채무 부담 완화, 금융지원, 투자펀드 등이 제도화하려면 별도의 재기 지원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과 정부의 시각이 부정적이어서 재기 지원법을 입법화하는 것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실패를 사회적 자산으로 접근하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재기 지원이 혁신 창업의 발판이라는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 창업→성장→회수→재창업의 선순환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패자부활전을 장려하는 제도와 관행이 자리 잡아야 혁신성장이 꽃피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