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세율 인상 이외에 공시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세금을 인상할 수 있는 근거 법령까지 신설했다. 최근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과 같은 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정부가 주택의 시세반영률(과세표준 현실화율)의 목표치 및 연도별 달성 계획을 인위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하였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마음대로 시세반영률을 인상 혹은 인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행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이 시장가격의 53%부터 79.5%까지였던 것을 몇 년에 거쳐 90%까지 인위적으로 접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공시가격이 변경되면 당연히 세금과 공과금도 영향을 받는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산출세액이 과세표준(공시가격)×공정시장가액비율×세율에 의해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 외 재산세 혹은 종합부동산세에 부가되는 도시계획분 재산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도 함께 달라진다. 또한 국민이 매월 부담하는 의료보험료, 국민연금 등 50여 개의 공과금도 기준금액(공시가격)×요율에 따라 계산되기 때문에, 공시가격 변동은 공과금의 인상에도 직결되어 영향을 준다.
공시가격 변경은 국민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다. 세금의 세율과 공과금의 요율을 국회의 의결을 통해 법률로 정하지 않고, 정부가 시행령에 의거 인위적으로 공시가격을 변경함으로써 국민의 세금과 공과금을 마음대로 인상 혹은 인하할 수 있는 것인가?
헌법 제59조에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는 조세법률주의를 두고 있다. 여기에서 세율은 국민의 조세부담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조세부담을 변경하려면 법률에 의거 세율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국민의 조세 부담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세금의 과세표준은 정부의 개입 없이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시장가격(교환가격) 혹은 수량을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주택의 취득세와 양도소득세의 과세표준에서 시장가격을 이용하고 있다. 다만, 주택보유 시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경우에는 시장가격을 알 수 없으므로 세법은 대체가격인 공시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차용하고 있을 뿐이다.
공시가격은 한국감정원 등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가 직접 목표치를 정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은 사실상 세금에 영향을 주는 세율과 같다. 지금까지 공시가격은 정부가 한국감정원(한국부동산원)에 위탁하되 개입하지 않는 형식을 취하여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객관적 가격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가 의도를 갖고 인위적으로 공시가격을 인상 혹은 인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해 공시가격은 객관적 가격에서 인위적으로 조정 가능한 주관적 가격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공시가격은 조세의 과세표준으로서의 객관성을 상실하였고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과세표준으로서의 자격도 없다.
결국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국민의 조세 부담을 변경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 공시가격이 세금 계산에 활용되지 않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공시가격은 세금에 직결되도록 세법에 규정하고 있다는 면에서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안 된다. 따라서 정부가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을 현실화하려면, 결산 및 예산안의 경우와 같이 매년 공시가격을 최종 결정하기 전에 국회 동의를 사전에 거칠 수 있도록 입법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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