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담보' 성동일 "IMF 땐 빨간 양말…힘들 때 위로해드립니다"

입력 2020-1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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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뚫고 손익분기점 목전…"재밌는 영화 소설입니다"

▲배우 성동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성동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저를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1998년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쳤을 때 드라마 '은실이' 속 '빨간 양말' 캐릭터의 능청스러운 모습은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줬다. 배우 성동일이 보여주는 솔직한 모습과 유쾌한 기운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이들을 위로해주기 충분했다. 성동일이 또 한 번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이들에게 영화 '담보'보다 더한 힐링극은 없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만난 성동일은 "우리 국민이 어려워지면 화려한 것보다 위로받을 수 있는 걸 생각하게 된다"며 "몇천억 원이 투입된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어진 관객이 과연 중급 예산인 영화에 성이 차겠나 싶지만, 우리 정서를 담은 영화니까 공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담보'(감독 강대규)는 인정사정없는 사채업자 두석과 그의 후배 종배(김희원 분)가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박소이 분)를 담보로 맡아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성동일은 까칠해도 마음만은 따뜻한 사채업자 두석 역을 맡았다.

"윤제균 감독이 '시나리오 재밌는 거 하나 있는데, 선배 두고 쓰다시피 했으니 읽어봐 달라'고 해서 받았어요. 실제 제 얘기 같기도 했고, 그만한 딸을 키우고 있어서 재밌게 해볼 만 하다 싶었죠. 정치적인 게 들어가지 않으니 재밌는 영상 소설로 만들기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나리오 보고 세 군데 찡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우리도 볼 수 있는 영화 찍어 달라'고 해서 출연하게 됐습니다."

'담보'는 성동일 그 자체다. 그는 승이 캐릭터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저는 사채업자라는 놈이 승이를 데리고 있으면서도 학교엔 보내려고 했잖아요. 그런 부분이 공감이 많이 됐어요. 저도 10년 넘게 호적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녀본 경험이 있으니까. 자라온 환경에 대한 공감대가 있으니 제가 느꼈던 부분을 참조해서 하려고 했어요."

그간 드라마, 영화 등에서 아빠 역을 숱하게 맡은 그이지만 '담보'는 좀 달랐다. 기존에는 다 큰 자식, 친자식을 키우며 아웅다웅한 모습을 보여줬다.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자식이 제일 키우기 힘들었어요. 보통 일정 동안의 이야기만 담는데, 이번엔 9살부터 성인 이후까지 키워야 했으니까요. 친자식한텐 심하게 나무라기도 하고 '아빠 힘들다'라며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지만 승이한텐 못해요. 기존에 했던 아버지와 딸 관계와는 전혀 다르죠. 어렵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시나리오에는 있지만 영화 본편에선 편집된 이야기들도 많다. "두석도 어린 시절 엄마한테 버림받은 인물이에요. 동네 입구에서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립니다. 할머니는 '안 와 이놈아'라고 말하죠. 그때를 회상하면서 승이한테 '너도 참 인생 더럽다. 나 닮아서'라고 말해요. 그래서 키우는 거예요. 사채업자가 갑자기 무슨 천사가 된 게 아니에요."

몇몇 부분의 편집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평소 성동일은 시나리오와 감독을 무조건 믿는 편이다. 영화화하기까지 감독은 자신보다 200배는 더 대본을 봤을 거란 판단에서다.

"제 것만 보고, 튀고 잘나려고 하면 전체 이야기가 안 돼요. 후배들한테도 항상 말해요. 레고로 성을 만들거나 비행기를 만들 때 조각 하나가 없으면 구멍이 뚫려서 만들 수 없잖아요. 배우도 그래요. 레고 하나하나는 단역이든 주연이든 소중한 존재들이죠. 하지만 영화를 조립한 사람은 감독이니까 믿고 갑니다."

'담보'는 성동일의 연기 스펙트럼까지 폭넓게 담아낸다. 그는 40대 중년의 모습부터 70대 노인의 얼굴까지 소화해내며 '믿고 보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처음엔 걸음걸이도 팔자로 세게 갔지만, 중간부턴 말 톤을 완전히 바꿨어요. 걸음걸이도 일자로 바꾸고요. 잔가지를 다 쳐냈죠."

친절한 감정 표현도 지양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엔 오히려 눈물을 삼켰다. 억지로 감정을 누르다 보니 머리가 아파져 두통약을 먹기도 했다.

▲영화 '담보' 포스터.
▲영화 '담보' 포스터.

"전체적인 대본에서 제가 제일 살리고 싶었던 신이 있어요. 다 큰 승이가 친부를 만난 후 저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아빠'라고 해요. 대본 볼 때부터 거기서 눈물이 나왔어요. 한평생 듣고 싶어했던 말이니까요. 친자식이 될 수 없을지라도 제대로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고민도 많이 했어요. 결론은 '눈물 흘리지 말고, 끝까지 버티자'였습니다. '아빠'라는 말을 듣고 언덕을 올라가는 두석의 뒷모습이 참 맘에 들어요."

8월 중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첫 100만 관객 돌파의 주인공이 된 '담보'는 이번 주말 손익분기점인 17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일 누적 166만 관객을 기록하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 성동일은 적은 돈을 투자했지만 두 시간 동안 누가 대신 책을 읽어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보시길 바란다고 했다.

"CJ나 윤제균 감독도 고민했을 거예요. 특수를 누리려면 내년 추석 때 개봉을 했겠죠. 하지만 나 살자고, 차가 아깝다고 굴리지 않으면 쓰지도 못한 채 차는 고장 납니다. 먼지 끼지 않고 녹슬지 않도록 조금씩 움직여줘야죠. 모든 기업, 가정, 식당도 녹슬지 않게끔 해야 하고요. 멈출 수 없어요. '담보'는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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