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십 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했지만 외면당했던 기후위기가 어느새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우리가 인지하기 시작했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몇몇 사람의 오판으로 벌어진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인류가 주범이며,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도덕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결정을 내린 것에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비난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의 감축을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세계 주요 7개국 중 처음으로 ‘2050 넷제로’를 목표로 한 법제화를 완료했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순배출량이 0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어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뉴질랜드 등도 관련 법을 만들었다. 이 외에 핀란드,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독일, 스위스 등은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정책을 세웠다.
반면, 대한민국은 어떨까. 글쎄다.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2016년 한국을 ‘기후악당’으로 꼽았다. 그런데도 한국은 2018년 사상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록했다. 이산화탄소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증가율(0.4%)보다 7배 높았다. 2년간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오죽하면 CAT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은 매우 불충분하다”고 질타했을까. 게다가 4년 전 우리와 함께 기후악당으로 지목됐던 뉴질랜드가 철저한 탄소 감축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과 대조된다.
2020년 들어서도 기후‧과학 정책 연구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탄소 감축 목표가 국제 기준의 50% 수준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넷제로’는 딴 세상 얘기였다. 그러다 최근 들어 정부가 갑자기 넷제로를 처음으로 선언했다. 반가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넷제로 선언에 대한 국제연합(유엔·UN)의 답변이 참 씁쓸하다. 유엔은 당시 논평을 통해 “목표 달성을 위해 제안·실행될 구체적 정책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점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안 그래도 늦은 깨달음, 거기에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도 없다는 의미다. 최근 국회도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하고 극복을 위해 앞장서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정부는 또 어떤 방향으로 이 어마어마한 목표를 달성해 나갈지에 대한 구체적 키워드는 없다. 하루빨리 ‘기후악당’, ‘탄소배출 세계 7위’, ‘재생에너지 저수준’, ‘기후변화대응 순위 꼴찌’ 등 한국의 슬픈 꼬리표를 떼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