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유럽연합(EU) 회원국 환경장관들은 2050년까지 EU 탄소중립화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유럽기후법안에 부분 합의하였다. 탄소중립은 탄소감축 활동을 통해 실질적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다. 작년 12월 EU 신임 집행위원회가 2050년까지 최초의 기후중립 대륙으로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환경정책, 이른바 유럽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하였다. 이번 합의는 유럽그린딜 추진을 위한 법제화의 과정인 것이다. 유럽그린딜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산업 및 순환경제, 건축, 수송 등 4개 영역과 친환경 농식품, 생물다양성 보존의 정책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집행위는 유럽그린딜 투자계획(EGDIP: 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을 통해 향후 10년 간 최소 1조 유로를 조성하여 그린딜 추진을 위한 세부 정책을 이행해 나아갈 것이라 밝혔다. 이 중에는 공정전환(Just Transition) 프로젝트, 즉 탄소중립 목표 이행을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패산업 지역 및 노동자를 구제하기 위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유럽그린딜 합의 과정에서 석탄 매장량이 높아 탄광지역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이 극심한 저항을 한 바 있다. 집행위는 유럽그린딜 추진 과정에서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는 시점,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탄광도시와 탄광지역 노동자에 대한 지역별 프로젝트 도입을 통해 이들 회원국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유럽그린딜 정책은 탄소중립 목표와 구체적 투자계획, 정책의 공정성을 갖춘 견고한 체제로 환경과 경제, 사회를 위한 완벽한 청사진으로 보인다.
유럽의 그린뉴딜은 기후변화로 ‘시계제로’의 상황에 처한 지구의 운명을 바꿀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다시 시민들의 일상이 회복되더라도 개선된 환경지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적 이동의 상당 부분이 제한되고 관광을 통한 항공·운송이 억제된 현재, EU 회원국들은 항공, 자동차, 석유회사 등 피해 산업에 대한 막대한 구제금융 지원이라는 또 다른 선택을 단행했다. 항공 부문에서 독일은 경제안정화기금을 통해 국적항공사인 루프트한자항공에 대한 지원에 합의하였으며, 프랑스는 에어프랑스, 에어버스에 막대한 자금 지원을 실행하였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지원은 독일, 프랑스의 경우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 형태로 진행되어 다소 환경친화적이라 할 수 있으나,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는 자동차 및 부품산업에 대한 저리 대출 형태로 추진되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량 매입하는 ‘녹색 양적완화’ 통화정책 또한 전면 보류되었다. 코로나는 기후변화에 일면 긍정적 역할을 하다가도, 그린뉴딜의 발목을 잡아 장기적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2019년 12월 새로 출범한 EU 집행위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신임 위원장은 이보다 앞선 11월 유럽의회의 신규 위원회 승인을 앞둔 연설에서 영국 탈퇴 이후 EU의 안정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을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소임으로 강조한 바 있다. EU는 환경이슈 소프트파워를 이끌며 장기 경제발전 비전을 치켜세우면서도, 당장의 위기 앞에 기존의 회색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정책도 단순히 하나의 정책 영역 내에서 논의될 수 없다. 녹색정책은 환경, 산업, 시민사회와 더불어 철저히 상호 연계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는 그린뉴딜 정책 또한 이와 같은 이율배반 상황을 고민하여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