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이 9개월 만에 재개된다. 다시 시작되는 재판에서 이 부회장 측과 특검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26일 오후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지난달 1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낸 재판부 기피신청이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1월 18일 네 번째 공판이 열린 지 9개월 만에 다시 시동이 걸리게 됐다.
일반적으로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지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이번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라는 취지의 소환장을 보냈다. 다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전날 사망하면서 이 부회장의 출석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공판준비기일 자체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핵심 쟁점은 양형이다. 삼성 측이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34억 원)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16억 원)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모두 뇌물로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의 총 뇌물 공여액은 86억 원으로 늘어났다. 해당 자금의 출처가 회삿돈이라는 점에서 횡령액도 86억 원으로 정해졌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판결을 내린 만큼 이 부회장도 유·무죄를 다투진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양형이 됐다. 이 부회장은 원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횡령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한다. 집행유예는 5년 이하의 징역형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 측에 불리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 측은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삼성 측에 준법감시위원회라는 숙제를 내줬다. 재판부는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이를 실효성을 점검할 전문심리위원 후보자 추천을 요청했다.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를 살펴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특검은 재판부의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감경 사유로 삼는 것은 근거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도 경영자 개인이 아닌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을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일관성을 잃은 채 예단을 가지고 편향적 재판을 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결국 특검은 지난 2월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으나, 대법원은 최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개를 앞두고 재판부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으로 단독 지정했다.
재판부는 “지난 공판기일(1월 17일) 특검과 변호인에게 전문심리위원 후보자 1인씩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변호인은 추천했으나 특검이 추천하지 않아 변호인이 추천한 후보자도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하지 않고 법원이 강 전 재판관만을 지정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재판부의 전문심리위원 지정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특검 관계자는 “전문심리위원 결정의 절차와 내용이 위법해 취소해달라는 것”이라며 “공판준비기일에 전문심리위원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기일 외에 지정한 점, 3명을 위원으로 지정하고 필요하면 회계 전문가도 위원에 포함한다고 했지만 단 1명만 지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