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사출업체를 운영중인 K사장은 "채무자 야반도주를 막는 것은 물론 고가 장비를 빼내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채권자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면서 부도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는 거의 매주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을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1원짜리 하나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9월 말 현재 4803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인천 남동공단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하다. K사장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라며, "월급을 몇달째 못 주다보니 직원들이 출근을 안해도 말을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남동공단에서 10년 넘게 중소기업을 운영중인 L사장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최대한 손해를 덜 보는 선에서 회사를 정리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인천남동구청 남동공단출장소 관계자는 "공단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흉흉하다"며 "신규 채용이나 투자는 거의 없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산업인력공단 경인지역본부 관계자는 "중기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은 알지만 그 숫자가 워낙 많다보니 정확한 실상 파악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는 "폐업 이후에도 신고 없이 이주하는 업체가 많다"며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많이 안 좋다"고 말했다.
공단 인근 식당의 손님은 절반으로 줄었다. 매출 감소도 문제지만 더욱 힘든 것은 회수를 장담하기 어려운 외상거래만 쌓여간다는 것이다.
1년 전부터 한 제조업체의 구내식당을 운영해왔다는 K 사장은 "거래를 끊고 싶지만 깔린 외상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며 "식자재는 모두 현찰로 사오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문닫는 공장이 늘면서 부동산 매물은 급증하고 있지만 실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아 부동산중개소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사장이 잠적하면서 매물로 나온 공장이나 사무실 등이 부쩍 늘었다"며 "IMF 당시는 임직원이 서로 힘을 합쳐 회사를 살리자는 분위기 많았던 반면 요즘은 모두 제 살길 찾기에 바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직원들의 동요와 루머를 막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내놓는 공장 매물이 늘고 있다"며 "시세보다 꽤 하락한 가격에 내놔도 거래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근로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거리는 갈수록 줄고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를 위기감에 빠져있는 것이다.
심각한 제조업 경기 악화 속에 은행권의 '높은 문턱'은 중소기업들의 희망에 찬 물을 끼얹고 있다.
특히 자금난으로 인한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흑자를 내는 알짜기업마저 도산 위기에 처해있다. 자금 압박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대책은 역시 말 뿐이다.
인천지역에서 꽤 알려진 중견 제조업체 J사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J사 N사장은 "정부가 연일 중소기업 관련 금융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로 1원짜리 하나 구경도 못해봤다"고 하소연한다.
신한은행 여신기획부 김상욱 과장은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한다. 김 과장은 "모든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또 "지원 받지 못한 업체들의 불만이 있겠지만 객관적 판단을 통해 금융지원에 나서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사채를 썼다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도 많다. 갑작스런 자금난으로 위기를 맞게 되면 당장의 부도를 막기 위해 위험성을 알면서도 사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18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 한해 도산한 기업은 1800여 개에 달하며 지난 3년간 제조업체의 41%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 10월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52%가 자금 조달 사정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0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2조6000억원이다. 전달에 비해 그나마 7000억원 정도 늘었지만 5~6조원이던 지난 6~7월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소위 '안전빵'을 추구하는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반면 대기업들에겐 7년10개월만에 최고치인 5조원의 대출을 늘려줘 대비를 이뤘다.
지난 14일 경남 김해시 한 아파트에서 40대 중소기업체 사장이 투신자살했다. 10년 전부터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해 온 P 씨는 최근 경기 침체로 판로 개척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P씨의 가슴 아픈 사연은 꽁꽁 얼어붙은 중소기업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날 P 씨의 자살 소식을 전한 일간신문은 한 곳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