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 우려에 자율배상 ‘지지부진’
일부 분조위보다 배상규모 커져
출범 이후 3차례 회의도 진척 無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의 자율조정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은행협의체에 선정된 피해기업들의 손실 규모가 1조1451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은행협의체 내부에선 일부 배상이 가능하다는 입장과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시점에서 배상하는 게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부정적 기류가 공존하고 있다. 협의체는 지난 6월 출범 후 4개월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이 배진교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은행협의체에 선정한 피해 금액은 하나은행 3330억 원, 한국씨티은행 2534억 원, 신한은행 2510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SC제일은행 894억 원, 국민은행 732억 원, 기업은행 377억 원이다. 피해 기업 수로 따져보면 하나은행 71개사, 신한은행 46개사로 씨티은행 42개사 순이다.
이는 키코 사태 당시 발표된 피해기업 732개 중 오버헤지가 발생한 기업 206개에서 이미 소송을 제기했거나 해산한 기업을 제외한 수치다. 이들 피해액은 약 1조1451억 원이다. 중복되는 기업을 제외하면 145개사가 해당한다.
금감원이 오버헤지 발생 여부를 판단한 기준은 이렇다. 각 기업별로 2006년~2008년 중 연도별 수출 실적을 산출한 후 2007년~2009년 중 연도별 키코 계약 규모를 산출했다. 전년도 수출실적 대비 키코계약 규모(헤지비율) 산출(2007년, 2008년, 2009년) 및 당해년도 수출실적 대비 키코계약 규모(헤지비율)를 산출(2008년, 2009년)했다. 총 5개 헤지비율을 산출한 것이다.
금감원 측은 “기업별로 5개 헤지 비율 중 가장 큰 값을 최종 헤지 비율로 산출했으며, 최종 헤지 비율 100% 초과 시 오버헤지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다만 은행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오버헤지 기준과 자율적인 배상이 필요한 기업 수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협의체는 추가 구제대상 기업에 대한 배상 방안을 자율적으로 논의하겠다는 목적으로 지난 6월 출범했다. 지난 7월과 9월, 이달 7일 등 세 차례 회의를 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선뜻 총대를 메고 협의체를 주도하는 은행이 없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부 은행은 분조위 배상액보다 협의체 배상 규모가 더 커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라며 “은행으로서는 분조위 결정도 거부한 마당에 협의체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 12월 은행들이 키코 피해 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총 255억 원)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은행별로는 신한(150억 원) 우리(42억 원) 산업(28억 원) 하나(18억 원) 대구(11억 원) 씨티(6억 원) 등이었다. 나머지 피해 기업 147곳에 대해서는 분쟁 조정 결과를 토대로 은행들에 자율 조정을 권고했다. 조정안을 받아들일 경우 은행들이 배상할 금액은 2000억원대로 추정됐다.
금감원은 이달 말까지 자율배상 절차를 연장했지만, 이 역시도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금감원의 배상 권고안 거부 의사를 재차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국책은행으로서 키코 피해기업 배상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 배진교 정의당 의원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키코 사태는 은행별, 판매상품별로 건건이 판단해야 한다”며 “산은은 불완전판매를 하지 않았고, 적합성 원칙, 설명 의무, 사후 관리 의무 등을 다 이행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