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로나 19로 계절이 파괴된 듯 살았다. 그러나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잘 키운 농작물 수확의 기쁨도 있겠지만, 독서로 마음의 양식을 풍요롭게 쌓을 수 있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 중에는 유난히 독서광이 많다. 그 중 빌 게이츠는 독서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에디슨과 견주면 빌 게이츠는 한 수 아래일 것이다. 에디슨은 1093개의 특허를 보유한 발명가로 그의 모든 발명은 독서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에디슨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인지라 독서의 계절에 그의 책 사랑을 짚어 본다.
어린 시절 에디슨은 질문이 많고 행동이 엉뚱하여 아이들은 ‘바보, 에디슨’이라고 놀렸다. 담임 교사는 에디슨을 가르칠 수 없다며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에디슨의 모친 낸시 여사는 공립학교의 평준화된 교육으로는 에디슨을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전직 교사의 경험을 살리고 아이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직접 아이를 가르치겠다고 결심했다. 낸시 여사는 에디슨이 읽을 책들을 손수 골랐으며 같이 읽었다. 이런 과정이 4년 동안 이어졌다. 낸시 여사는 에디슨을 역사와 문학의 세계로 이끌고 물리학의 세계로 안내했다. 에디슨은 훗날 어린 시절 어머니의 독서지도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는 나를 만든 분입니다. 그녀는 너무나 진실했고 나를 믿어주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내가 절대로 실망을 안겨드려서는 안 되는 분이 있다면 그분도 어머니였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에디슨의 독서는 이어졌다. 그는 청년 시절 미국 중서부 지역을 떠돌며 전신기사 일을 했다. 분주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독서를 잊지 않았다. 에디슨은 주로 전신, 음향, 화학 분야의 전문 서적을 탐독했다. 또한, 철 지난 문학 잡지를 즐겨 읽었으며 이 잡지들을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에디슨은 과학 분야에서는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의 서적을 좋아했고 문학에서는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사랑했다. ‘레미제라블’은 그가 아주 좋아한 작품이었으며 에디슨은 위고의 팬이었다. 그가 위고에게 어찌나 열렬한 찬사를 보냈는지 그의 동료들은 “빅토르 위고 에디슨”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에디슨의 독서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그는 연구 도중에도 독서에 빠졌으며 이때도 역시 전공 서적만 읽은 것은 아니다. 인물 평전은 물론이고 연애소설까지 다방면의 독서를 즐겼다. 그의 책 사랑은 도서관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다. 에디슨은 30대 초반 자신의 연구소에 도서관을 세우고 책과 정기간행물을 사들였다. 출판물을 사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에디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쓴다’고 할 정도였다.
에디슨은 이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서관에 투자했다. 그의 도서관에는 기술 저널, 수많은 특허 문서가 빼곡히 자리 잡았다. 에디슨은 연구를 위해서라면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읽었다. 어느 날 에디슨이 기자와 인터뷰를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뭔가 발견해내고 싶을 때 먼저 책을 찾아 읽습니다. 과거 누군가가 쓴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지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이 책들이 여기 있는 겁니다.”
그의 영감과 아이디어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독서에서 나온 것이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문학도에게는 빅토르 위고를 권하고 이공학도에게는 마이클 패러데이를 권해 본다. 아니, 창의적 융합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가 더 좋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