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꼬리잡기] "14주까지 낙태 허용" 정부 개정안에 찬반 측 모두 반발…이유는?

입력 2020-10-13 17:32 수정 2020-10-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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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찬·반 모두 반발
낙태 찬성 측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내용 있어야"
낙태 반대 측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힌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와 유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힌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와 유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대해 낙태 찬성·반대 측이 모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이유로, 낙태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사실상 '전면 낙태 허용'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개정안을 비판했다.

앞서 정부는 7일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14주 이후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15주∼24주 이내에는 성범죄로 인한 임신이나 임부의 건강위험 등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조건부'로 낙태를 허용하기로 했다. 단, 24주가 넘으면 임신중지를 할 수 없거나 낙태죄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는다.

법무부가 14주와 24주를 낙태 허용 기준으로 삼은 것은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면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임신 22주 내외'로 보고 그전까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던 점을 근거로 한다. 당시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임신 제1삼분기'(대략 마지막 생리 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낙태 찬반 단체 모두 강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정부의 개정안이 모두의 반발을 사고 있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완전 폐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완전 폐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낙태 찬성 단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내용 있어야"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었는데 이 내용이 제외됐다는 것이다.

문설희 위원장은 "여성을 죄인으로 다스리는 기존의 처벌 조항은 폐지돼야 맞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처벌 조항은 전면 삭제돼야 한다는 취지"라며 "모자보건법에서는 임신중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 법 개정이 돼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지원이 아니라 여전히 낙태 예방에 그쳤다"라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문설희 위원장은 개정안에 명시된 주수 제한에 대해 "주수는 사실 여성이 임신했을 때 병원에서 의사가 여성의 답변을 기준으로 주수를 대략 정하고 임신 초기에 어떤 처방이 필요하고 중기·후기로 갈 때는 어떤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의료적인 기준일 뿐"이라며 "그것이 여성을 처벌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이번 개정안으로 생명을 경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생명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생명"이라면서 "종교계에서 거론하고 있는 생명의 개념은 뱃속에서 아직 인간으로 발달하기 전의 태아를 생명으로만 일반화시키면서 경시한다고 하는데 이는 개념을 왜곡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케이프로라이프 등 단체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서 임신 14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과 관련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케이프로라이프 등 단체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서 임신 14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과 관련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 반대 단체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송혜정 이사(케이프로라이프 상임대표)는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한다는 개정안의 내용은 실제로는 24주까지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낙태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송혜정 이사는 "본래 낙태법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입법 목적이다. 그래서 (낙태하는) 부녀, 그리고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들을 처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그런데 태아의 생명에 관한 취지를 빼버리고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상황의 논리만 앞세워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낙태 비범죄화'라는 프레임으로 바꿔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송혜정 이사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성차별적인 발상'이라며 "낙태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낙태가 허용되면) 부담을 다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관계의 주체는 남자와 여자인데 피임·임신·출산·낙태까지 여성이 다 책임을 져야 한다"며 "생부가 아이가 일정 기간 자랄 때까지 양육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남성책임법'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발달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임신에 대해선 "원치 않는 임신은 반드시 있고 키울 수 없는 아기는 반드시 있다"며 "특별하게 그분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무조건 낙태만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지난해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지난해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법조계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본래 취지에 반하는 안"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안이 아닌가 싶다"며 반대의 뜻을 보였다.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의 본래 취지와는 어긋난다는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최소한 14주 이내에는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하고 24주 안에서는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며 "기본적으로 헌법재판소는 낙태의 비범죄화를 전제로 하고, 임신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 삼분기설에 따라서 규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상희 교수는 "개정안은 전 임신 기간의 낙태를 범죄로 만들어놓고 제1삼분기 동안의 낙태는 단순히 위법성 조각사유(구성요건 해당성이 성립하나 실질적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로만 제시해놓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까 임신부에게는 엄청난 법률적 부담이 간다. 헌법재판소는 그 기간(제1삼분기) 동안은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이 존재하는 영역이라고 봤는데 기본권의 영역을 범죄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핵심은 여성의 삶의 문제다. 이는 형법의 문제도 아니고 의료의 문제도 아니므로 여성가족부 소관이어야 하는데 (논의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돼버렸다"며 "처벌할 거냐, 처벌할 거면 어떤 요건을 기준으로 만들 거냐만 가지고 논의를 한 것이다. 형벌에 초점이 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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