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세대 자화상] “눈높이 낮추라고요? ‘이백충’ ‘휴거’ 조롱 받아요”

입력 2020-10-06 05:00 수정 2020-10-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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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비정규직 법적 보호 없어… 저소득층 차별·혐오에 박탈감

▲지난 8월 1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 노조 주최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1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 노조 주최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기성세대는 청년 취업난·주거난의 배경으로 청년들의 ‘눈높이’를 지적한다. 최종 목표를 낮추면 목표 달성이 쉬워지므로 불확실한 ‘한방’에 의존해야 할 필요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대통령 후보 신분이던 2007년 9월 12일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눈높이를 조금 낮춰 여러 경험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3월 29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청년들에게 ‘중동 진출’을 제안했다. 현 정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 3법’을 강행 처리한 후 전세 매물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윤준병 의원 등 여당 관계자들은 ‘월세 불가피론’을 꺼내 들었다. 국제 추세를 고려하면 전세제도는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란 논리다.

하지만 눈높이를 낮추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청년이라 못 낮추는 게 아니다. 대상이 누구든 사회에서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차별과 혐오에 노출돼서다.

노동시장에선 강성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이 확고한 주류다.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보험설계자로 대표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은 양대 노동조합총연맹(한국·민주노총)을 통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갑질도 만연하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욱진(32·남·가명) 씨는 “원청사에서는 재고관리를 안 한다. 알아서 채워 놓으라는 식이고, 재고가 모자라 문제가 생기면 비용을 전가한다”며 “이런 식의 갑질이 수도 없이 많다”고 토로했다.

사회적으론 온갖 혐오·차별 표현이 난무한다. 저소득 근로자를 비하하는 ‘200충(월수입 200만 원대)’, 건설·일용직 근로자를 비하하는 ‘노가다’,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폰팔이(휴대전화 판매직)’, ‘용팔이(용산전자상가 상인)’, ‘렉카충(견인차량 운전기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분야를 불문하고 혐오·차별 표현들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저가주택 거주자를 비하하는 ‘주거(주공아파트거지)’, ‘휴거(휴먼시아거지)’, ‘빌거(빌라거지)’, 지방사립대 출신을 비하하는 ‘지잡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경차나 소형차 운전자들에게는 ‘뚜벅이(걸어 다니는 사람)만도 못하다’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직장인 박보라(29·여) 씨도 같은 이유로 수입차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하루는 사무실에 명품 핸드백을 들고 갔는데, 동료 직원이 ‘그 차에서 내리면 그 가방도 짝퉁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며 “소득이 넉넉지 않다는 걸 알지만 자꾸 수입차로 눈이 간다”고 말했다.

주거 차별은 이미 사회 문제 수준이다. 정부가 지난달 서울 태릉 골프장과 경기 정부과천청사를 개발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임대주택 공급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표면적으론 주택 과밀과 교통 문제가 반대 이유이지만, 지역 커뮤니티 등에선 임대아파트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저소득층과 섞여 지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 ‘서민 동네’ 이미지로 인한 집값 하락 우려 등이 실질적인 반대 이유다.

일부 신조어들은 사회 구성원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눈다. 아파트단지에서 ‘국평(국민평형·전용면적 84㎡)’, ‘대장(최고가 단지)’ 등이 그렇다. 국평에 못 살면 국민도 못 되는 세상이다.종류를 불문하고 SNS를 중심으로 한 차별·혐오 표현은 불특정 다수에게 박탈감을 안겨준다. 나름의 성공을 달성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전문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용석(35·남·가명) 씨는 사회에서 ‘엘리트’로 대우받지만, 스스로는 ‘연봉 많은 회사원’ 정도로 여긴다. 김 씨는 “SNS가 발달하면서 누구는 가상화폐로 수십 억 원을 벌었고, 누구는 건물주가 됐고, 누구는 고가 수입차를 샀다는 , 예전 같았으면 접하기 어려웠던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며 “의사라도 그렇게는 못 산다. 계속 그런 얘기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성공한 게 맞나’ 하는 회의가 든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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