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산업 규모는 2019년 기준 24조3100억 원으로 해마다 5%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산 신약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수출도 꾸준히 늘면서 여타 제조업 대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후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업계는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연말까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가 지속할 경우 국내 제약 ·바이오산업이 약 1조8000억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1분기 선방했던 원외처방 실적은 2분기 전년동기 대비 감소세로 전환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1분기에는 환자들이 일부 의약품을 장기처방 받으면서 일시적으로 처방액이 증가했으나, 방문 기피현상이 심각한 소아청소년과나 이비인후과의 처방건수가 대폭 줄면서 원외처방 실적 감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앞서 한국병원협회는 의료 이용이 최대 46.7%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기업 간의 온도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종근당처럼 만성질환 의약품 중심인 회사는 별 타격이 없었던 반면, 대원제약처럼 호흡기질환에 강점을 가진 회사는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하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처방 실적이 회복되지 않고 대면 영업도 차질을 빚으면서 하반기에도 양극화는 뚜렷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원료의약품 수급도 난제로 떠올랐다. 원료의약품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완제의약품 생산차질이란 짐이 가중된다.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2018년 기준 26.4%에 불과하다. 원료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활성의약품원료(API)와 API를 만드는데 필요한 중간체는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인도에서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료의약품의 33%를 중국에서, 9.5%를 인도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다.
중국·인도산 원료의약품 의존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유럽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런 상황에서 환율 불안까지 겹치면서 원재료비 상승이 필연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수입 원료가격 25% 상승을 가정하면 약 1조655억 원의 비용 증가가 발생하게 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이 중단되거나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전체 임상 시험에서 ‘종료’로 분류되는 건수는 지난해 1~9월 318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85건으로 크게 줄었다. 코로나19로 임상이 중단·지연되면서 종료 건수가 급감한 것이다.
실제로 올릭스는 비대흉터치료제(OLX101)의 임상 2상을 올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환자 모집이 원활하지 않아 종료 시점을 내년으로 미뤘다.
해외에서 진행 중인 임상도 마찬가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임상 정보 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스에 따르면 올해 1~5월 임상 중단 사례는 25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33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중단 사유는 코로나19 여파로 임상 등록이 미뤄진 경우(69.9%)가 가장 많았다.
비보존은 비마약성 진통제 오피란제린(VVZ-149)의 미국 임상 3b상 첫 환자 등록을 6월 시작했지만, 미국내 코로나19확진자가 쏟아져나오자 8월 중순께 중단했다. 헬릭스미스는 중국 내 코로나19 여파로 현지 파트너사와 공동개발 중인 ‘엔젠시스(VM202)’의 임상 3상을 잠정 중단했다가 7월 다시 재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임상 승인 주체의 역량과 인력·자원 등이 코로나19에 집중된 여파”라며 “사태 초반에는 병원 폐쇄, 최근에는 재확산으로 환자 모집난을 겪으면서 임상 시험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