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느슨한 재정준칙으로는 건전성 방어 힘들다

입력 2020-09-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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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금명간 재정준칙을 발표한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등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재정준칙의 법제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코로나19에 따른 올해 4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재정준칙 도입은 더욱 절실해졌다.

재정준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터키를 제외한 34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국가채무와 재정수지 적자의 한도를 정하는 방식으로 국가신인도에 직결된 사안이다. 원칙과 안정성이 흔들리면 나라 신용이 위협받는다.

정부는 ‘유연한 재정준칙’을 밝힌 바 있다. 건전성 기준을 설정하되, 올해처럼 재난이 닥치는 상황에서는 완화적 확장 재정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채무나 재정수지 지표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 필요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기준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페이고(Pay-Go) 원칙도 넣되 적용에 유예기간을 둔다고 한다. 페이고 원칙은 의무적 재정지출 법률을 만들 때 재원조달 방안을 함께 명시하는 것으로 반드시 법제화가 필요하다.

결국 준칙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란 비판과 함께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물론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국가채무를 늘려서라도 급한 불을 꺼야 한다. 재난으로 생계가 위태로워진 취약계층을 구제하고 한계상황의 기업을 지원해 경제시스템 붕괴를 막는 재정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재정은 벌써 적신호가 켜져 있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국가채무는 840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43.5%였다. 정부가 다시 4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7조5000억 원의 적자국채를 찍어내 빚은 더 늘어난다. 실제 나라 살림살이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6.1%로 역대 최고로 높아진다. 2022년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넘고, GDP 비율도 50.9%에 이른다.

저출산·고령화로 재정의 의무지출만 늘어나는데, 생산인구 감소와 성장률 하락으로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 추세다. 2020∼2024년 재정의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이 5.7%인 반면 총수입 증가율 전망은 3.5%에 그친다. 과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로 삼았던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은 이미 무너졌다.

정부는 우리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고 주장하지만, 빚을 늘려도 문제없는 기축통화국들과 비교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채무증가와 재정건전성 악화는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위험요인이다. 모든 경제위기는 과도한 부채에서 비롯된다. 엄격한 준칙이 아니라면 재정건전성의 급속히 악화에 제동을 걸기 힘들다. 실효성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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