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2020년이 됐다. '비례대표 3번'을 달고 국회에 입성한 권 의원에게 여전히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무겁게 다가온다. 고위직 여성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며 디지털 성범죄를 1호 법안으로 낸 것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관련된 사태에서도 '참혹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도 책임감 때문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권 의원을 만났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그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중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아이를 키우며 공부했던 여성으로 살았던 삶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3월 19일 의사를 밝히고 벌써 6개월이 지났네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으로서도 문재인 정권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어요. 여성 의제는 분야적 특수성이 있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계속해나가지 않는 사람이 하기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례대표를) 응하게 됐습니다."
다음은 권 의원과 일문일답.
-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이자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과거 피해자로서의 경험이 여성 인권과 관련된 목소리를 내는 데 어떤 영향을 줬다고 보는지.
"전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피해자다움'이라는 단선적인 규정과 통념 때문에 피해자는 '아주 슬퍼하고 우울해서 살려달라고 말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나약하고 상처받고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식으로 제 문제를 바라본 적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에 대한 다른 시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피해자로서, 특히 유명한 사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게 어떤 의미일지에 대한 감성이 있다."
- '피해자는 이래야 돼'라는 관념을 깼다. 성고문 사건 당시 유치장에서 옆 사람과 대화도 하고 농담도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피해자에 대한) 잣대가 굉장히 세다. 2014년쯤 한 팟캐스트의 진행자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변호해주신 조영래 변호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엄청난 사건이다. 인생을 망쳤다'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굉장히 놀랐다. 말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공감 어린 멘트의 수준이 그 정도였던 거다. 사회는 인생을 망친 사람이 감성적 대응을 했을 때 '너는 믿을만한 피해자'라고 말한다. '강간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학생들의 인터뷰도 봤다. 그런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문화도 결국 폭력 아닌가. 어떤 경험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 '살아나가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을 것 같다.
"각자 자기 삶 속에서 폭력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기분 나쁘고 불쾌한 일을 겪었을 뿐이라며, 삶의 한 부분으로서 소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인생이 무너져 나가는 시기에 모든 것과 겹치면서 모든 가치가 무너질 수도 있다.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사회가 '이런 범죄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해'라고 강요하는 건 허락될 수 없다."
- '부천 성고문' 사건 발생 이후 3년 만에 가해자 문귀동은 대법원에서 징역 5년 판결을 확정 받았다. 권 의원께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받은 배상금으로 노동인권회관을 세웠지만, 1994년 여성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해나가는데 굉장한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나다움'은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나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요구나 기대, 가치기준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사회적 기준에 압도당한 채 살아간다. 외모적 평가가 시작점이다. 1980년대 가치관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은 걸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었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성차별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헌신하는 여성에 대한 평가는 높았지만, 이를 강요하는 문화가 강했다. 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판단과 어떻게 관점을 만들어나갈지 생각해야 했다. 여성학이 꼭 필요했다."
- 여성에게 주어지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결혼 후 가정을 돌보고 아이의 주 양육자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있지 않나.
"모성은 굉장히 센 틀이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건 엄마의 역할에서 강하게 강조된다. 벗어나기 어렵다. 남편을 내조해야 한다는 문화에서 아이 양육으로 여성의 역할이 옮겨졌다. 한국 문화에서 더 그렇다. 우리의 신분을 결정하고 아이의 안정된 삶과 연결되는 게 교육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성이라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 엄마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해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중요해진 건 2000년대 이후다. 엄마가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만 해도 여성들은 시부모 봉양, 과도한 가사노동 등을 힘들다고 말했다. 이젠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계급 이슈에 막혀있었던 대학 입학이 열리면서 모성과 성과가 맞물리기 시작했다."
-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나.
"유학생활을 하면서 딸을 키웠다. 아이가 말이 조금 늦었는데 '엄마가 아이를 안 돌보니 아이가 말이 늦지'라는 말을 들었다. 공부하는 엄마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부적합한 엄마'라는 시선이다. 엄마의 시간적 부재가 아이에게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말을 아무런 관찰도 없이 하는 거다. 지금도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은 할머니, 도우미를 이용해서라도 아이를 4~5시에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한다. 직장 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아직도 기준이 되지 않고 있어서다."
- 여전히 일하는 여성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지 않은 것인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계층이 높은 여성 중 상당수가 직장을 그만둔다. 2000년대 47% 정도였던 여성고용률이 20년이 지난 지금 52%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말하던 학생들도 거의 없고, 직업을 위해 결혼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는데, 고용률은 4% 조금 넘게 늘었다. 모성 이슈와 교육 문제는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 여성의 경력 단절은 육아가 아닌 결혼부터 이뤄진다. 여성들은 이 무렵 삶의 갈등을 겪는다."
-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여성들의 롤모델도 많지 않다. 높은 직위에 올라간 여성의 삶이 자신의 삶으로서 지향성도 있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하면 왜 직장을 그만두는지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는 모성애에 대해 강하게 요구한다. 일할 사람이 줄고 나이 들고 사회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게 고령화 문제의 중요한 근거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는 여성 노동력 활용이 안 되고 있다. 정말 큰 문제다."
- 고위직 여성 비율이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자리에 여성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건 기분이다. 그것도 안 돼 있는 거다. 사기업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소화할 여력조차 되지 않는다. 기본 노동시장의 구조에서 여성이 최대의 희생자가 되는 거다. 육아 휴직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은 임신해서 애 낳는 여성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여성은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정책 수혜자도 대기업, 공공기관, 정규직 여성들에 한정돼 있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