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고려와 달리 성리학적인 의리와 명분에 갇힌 국가였다. 의리와 명분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이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 명나라 신종을 기리고자 1704년 숙종 30년에 충청도에 세운 사당이다. 조선말까지 역대 관찰사들은 이 만동묘에 제사를 지내왔고, 심지어 일제 식민지 시절까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대보단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보내준 명나라 신종 만력제의 은덕을 기린다는 취지로 1705년 숙종 때 창덕궁 후원에 세운 제단이다. 구한말 고종까지 이어진 대보단 제례는 갑오개혁에 와서야 중단되었다. 조선의 대보단 제례는 청나라의 눈을 피해 몰래 지냈다고 하니 어떤 국가의 외교사에 이런 ‘의리’가 있을까 싶다. 국가간 관계는 냉정한 힘의 역학과 실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현실을 모르고 역사에서 사라진 명나라 황제 제사나 지내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에픽게임즈의 앱스토어에 대한 ‘반란’을 계기로 그리고 구글이 초래한 인앱 결제 30% 수수료 정책의 콘텐츠 앱 전체 적용을 둘러싸고 국내의 논란이 뜨겁다.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구글과 애플의 ‘횡포’에 많은 이들이 분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구글과 애플에 의한 모바일 생태계 지배에서 중요한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이 이미 IT강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2천년대 초반 한국이 IT강국일 때는 구글이나 애플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시장 이외의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에서 획기적인 IT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극단적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해서 중국 시장 철수 정도의 타격을 받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법을 지키지 않으면 중국 정부에 의해 가혹한 제재를 받거나 구글처럼 퇴출당한다.
심지어 글로벌 강자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애플의 아이폰에 뼈아픈 일격을 당한 후 두 기업은 절치부심하며 삼성전자는 갤럭시로,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OS로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동시에 삼성전자는 양면전략을 구사, 독자의 OS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2009년 독자 OS ‘바다’를 공개하고 2010년 바다를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를 출시했다. 웨이브폰은 첫 해 500만 대가 팔리는 등 순항하는 듯했으나 결국 2013년 바다와 함께 소멸한다.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구글과 협력과 긴장의 양면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구글과 ‘겸상’할 수 있는 수준의 글로벌 기업이지만 한국의 다른 IT 기업이나 게임사들은 경우가 다르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구글이나 애플이 국내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아도 그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구글은 한국의 한국 검찰이 미국 본사에 소환장을 보내도 묵살하거나 아예 반응을 하지 않는다. 또 구글은 서버를 싱가폴에 두고 한국 서비스를 한다. 구글은 매년 5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만 법인세 등도 거의 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그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방법은 글로벌 ‘합종연횡’ 전략일 것이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강력하게 항의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이다. 국감은 훌륭한 문제제기의 장이다. 다만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낮아 글로벌 ‘악덕기업’에 제대로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민관이 문제를 제기하고 강력히 대응할 경우 타국이 한국 사례를 들어 문제제기하고 입장에 동조할 수 있다.
특히 유럽 같은 경우 ‘구글세’를 도입할 정도로 구글이나 애플에 적대적이다. 그런 점에 있어 한국은 유럽을 끌어들여 ‘동맹군’을 확보해야 하고 필요하면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들과도 보조를 같이 할 수 있다. 지금 중국 전국시대에 탄생한 ‘합종연횡’의 전략을 다시 꺼내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