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기업의 양성평등과 5Why

입력 2020-09-23 16:22 수정 2020-09-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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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경영상 문제해결 기법 중 5 Why라는 게 있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 5번은 연속으로 ‘왜?’라는 질문을 해야 문제의 근본 지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야외에 있는 박물관 외벽이나 동상의 부식 해결법이다. 예컨대, 동상이 부식되는 문제가 있다. 직접적 원인은 표면이 금방 더러워져서, 자극적인 화학 세제로 자주 세척하기 때문이었다. 이 경우, 표면의 부식을 줄이기 위해 청소 주기를 늦추거나 덜 자극적인 세제를 쓰는 게 일반적인 해결책이다. 그러나 여기서 왜? 라는 질문을 계속 하면 해결책이 달라진다.

표면이 금방 더러워진다. 왜? → 비둘기가 많이 와서 배설물이 많이 묻는다. 왜? → 비둘기가 거미를 잡아먹기 위해서. 왜? → 거미가 나방을 잡아먹기 위해서. 왜? → 나방이 불빛을 비춘 외벽이나 동상 위로 모이기 때문이다. 왜? → 박물관이나 동상이 돋보이도록 일찍부터 조명을 밝히기 때문이다. 5번의 Why를 거친 후 해결책이 전혀 달라졌다. 이후 야간 조명을 2시간 늦추기만 했는데도 표면 손상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5 Why는 문제가 고질적이고 다각적일수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때 유용한 툴이다. 여기서 질문의 횟수 자체 보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며 결국 근본에 이르는 게 중요하다.

기업의 양성평등 문제를 볼 때도 단순히 드러난 결과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맥락에 대해 다각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하다. 먼저 전체 수치다. 2019년 기준, 당 연구소의 환경 사회 및 지배구조(ESG) 평가 대상인 943개 한국 상장기업의 평균 여성이사 비율은 3.2%이다. 현저하게 낮은 수치지만, 2017년 2.4%와 비교하면 증가 추세에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전체 평균이다. 산업별로 차이가 커 다시 어느 산업에 속한 기업인가? 를 물어야 한다. 당연구소의 커버리지 기준으로, 가정용품 여성임원 비중은 9.6%,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6.3%, 제약 바이오 5.3%로 나타났다. 그러나 건설은 1.8%, 운수 창고도 0.44%에 불과하다. 2019년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2072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교육서비스업 15%, 예술 스포츠 여가 관련 서비스업은 9.3%에 이른다. 여성이 유리하거나 불리할 수밖에 없는 산업별 특성 때문이다.

그럼 산업별 수치와 특성만으로 양성평등이 실현된 기업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여성 임원 비중이 높더라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일 경우,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출발선인 ‘이사회 다양성’ 취지가 다소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연구소 기준 여성 임원 중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인 비율이 40%에 달한다. 여성 임원 비중이 가장 높은 교육서비스업의 사외이사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여성 임원 비중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과 같이 봐야 하는 이유다.

기업 안으로 들어갈수록 질문은 좀더 구체화해야 한다. 여성이사 이외 비등기 여성임원 비율은? 여성 임원 승진 비율은? 그렇게 승진한 여성 임원의 평균 근속 연수는? 일반 직원의 여성 비율은? 남녀 간 임금격차는? 담당 업무별 남녀 비율은? 등 원인과 결과가 되는 항목들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면서 타사와 비교해 그 현황을 파악하고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기업의 기본 목적은 이윤 추구이므로, 성과도 중요하다. 즉, 여성 임원이 많을 경우 기업의 재무성과에 도움이 되나? 의 질문이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임원이 30%인 기업이 남성임원만 있는 기업 보다 경영 성과가 월등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Joecks et al, 2012). 그럼 이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을까? 스위스 투자평가사 로베코샘(RobecoSAM)은 여성비율과 재무성과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려면 이사회에서 20%이상, 관리 수준에서 30%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여성의 이사회 참여로 이사회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아무 증거가 없다’는 보고(Dobbin et al, 2011)도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여성임원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당연구소 평가 대상 943개 기업을 보면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소폭이나마 매년 더 높게 나온다. 여성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관계지향적 성격, 마케팅 같은 정성적인 업무 특징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된다.

5번의 질문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있다. 양성평등의 ESG를 왜 하는가? 의 문제다. 이는 사회적 인프라와 인식 형성의 문제다. 재무 목적을 넘어, 내 여동생과 내 딸이 좀더 평등한 대접을 받는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재무성과 지표 외에 사회적 결과(Social Outcome)란 지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기업은 재무만으로 한정하기엔 역할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생활과 밀착돼 있다. 반복적인, 다각적인 Why를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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