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특혜 휴가’ 의혹도 공정성이라는 화두가 다시 불붙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엔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분노의 대상이다. 기성세대가 수십 년간 ‘부모 찬스’를 일반적인 관행으로 치부하고 넘어간 것과는 그 결이 다르다.
우리 사회가 어느 틈인가 공정한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다양성과 전문성·창의성이라는 미명 아래 걷어내면서 출생이 곧 신분을 결정하는 ‘불평등 시대’로 굳어지고 있다. 부동산 구매 시 ‘부모 찬스’를 받지 못한 사람은 전문직 고소득자가 되지 않는 이상 서울에서 집 장만은 꿈도 꾸지 못한다. 심지어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도 돈 없으면 하지 못한다는 푸념이 나온다. 1970·80년대 신문지면에 자주 보도됐던 광부의 아들, 구두닦이의 딸 사법고시 합격 소식은 90년 후반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이젠 사법고시 폐지로 들을 수도 없다. 물론 법학전문대학원 저소득층 장학제도가 있지만 로스쿨 특혜 입학 의혹만 뉴스로 나오는 세상이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절망에 빠진 청년들에겐 교육·취업·병역만큼은 불공정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역린’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15~29세) 실업률이 2009년 8.0%에서 지난해 8.9%로 10년 만에 0.9%포인트 늘어났다. 이는 2009년과 비교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순위가 15계단이 밀려난 20위다. OECD 평균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10.5%로 10년 사이 4.4%포인트 줄어든 것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청년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13일 통계청은 통계 작성 후 역대 최대였던 지난달 구직단념자 68만2000명 중 절반이 20, 30대 청년층이라고 밝힌 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용시장에서 청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을 보여준다. 청년 실업은 한번 사회에서 낙오되면 평생 낙오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린 1999년 외환위기 때 ‘IMF 세대’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코로나 세대’가 생기면서 이들 세대에겐 불공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로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존 세대에서 관행적으로 했던 부탁이나 양해는 ‘코로나 세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됐다는 뜻이다.
최근 추 장관 아들 서모 씨의 특혜 휴가 의혹에 대해서 추 장관이나 더불어민주당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에서 추 장관의 전 보좌관은 “서 씨의 부탁을 받고 군부대에 전화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해서도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추 장관의 청탁 의혹 사건이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해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 찬스’라는 불공정이 나왔다는 자체가 문제된다는 점이다. 이번 의혹에 대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군 휴가연장, 카톡으로 가능하다”며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의 “김치찌개 시킨 것을 빨리 달라고 하면 청탁이냐”고 한 발언이나, 황희 의원의 당직사병(최초 제보자) 실명 공개와 ‘단독범’ 표현은 민주당의 현실 인식 부족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추 장관이나 민주당은 왜 국민이 이번 사건에 대해 실망하는지, 특히 청년들의 분노가 큰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불법이 아니면 모든 게 용서되던 과거 기성세대 관행은 이젠 역사적 유물로 퇴적되고 있다.
추 장관 아들 측 주장대로 ‘단순 문의’라면 왜 검찰 수사가 8개월이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지 국민은 의문을 품고 있다. 공정에 대한 검찰 신뢰가 의심받는 이상 이번 수사는 야권의 주장대로 특별수사팀 등 별도의 관련 수사기구가 조사하는 것이 맞다. 차후 또 다른 불공정 시비를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추 장관의 결단이 필요하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이런 결단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