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대기업에 더는 '구조조정 안전지대'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소비 패턴이 바뀌고 신산업의 등장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기존의 사업 방식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사상 최악의 경영환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항공업이 대표적이다. 이스타항공은 이달 정리해고 대상자 605명에게 이메일을 통해 해고를 통보했고, 지난달에는 희망퇴직을 통해 98명이 회사를 떠났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들은 인력 구조조정 없이 순환 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고용유지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항공업 종사자의 65%가 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공업도 심각한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명예퇴직을 시행해 약 900명이 퇴사했다. 또, 5월부터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350여 명의 직원이 휴직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올해 1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현대로템도 기존 38개 실을 28개로 축소하는 조직 통폐합을 하면서 책임매니저 이상 관리직 지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임원 수도 기존 대비 20% 줄였다.
자동차 및 부품 업계에서도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7월 약 400명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한 이후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치면서 순환 휴직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르노는 본사가 글로벌 공장 6곳에서 1만5000명을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져있는 상황이다.
타타대우상용차는 이달 말까지 근속연수 1년 미만 제외한 직원을 대상으로 대상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자일대우상용차(대우버스)는 직원 447명 중 85%에 달하는 377명을 정리해고하면서 생산직은 단 4명만 남았다.
만도 또한 3월 전체 생산직의 10%에 해당하는 약 200명을 대상으로 자발적 희망퇴직 받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코로나19 영향뿐만 아니라 전기·수소차 시장의 개화에 따라 자동차 업계의 고용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장 신설,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른 인력 재배치가 불가피한 탓이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전기차 핵심 부품을 외부에서 생산할 경우 인력 감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현대차 노조는 전기차 전용 공장을 국내에 신설하거나 기존 생산시설 중에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아차 노조 역시 현대모비스의 친환경차 부품 공장 신설에 따라 인력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공장 신설에 반발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에쓰오일(S-OIL)에서도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한화도 전 세계 교역 부진으로 무역사업을 재편하면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전자업계에선 디스플레이 회사들의 희망퇴직이 두드러진다. 사업 재편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상반기부터 희망퇴직과 타 사업부·계열사로의 전환 배치에 나섰다. 이에 앞서 LG디스플레이는 작년에 희망퇴직을 시행한 바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글로벌 저성장과 제조업 경기둔화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불확실성 고조로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는 상태가 3년간 지속하는 ‘한계기업’에 속하는 대기업은 413개로 전년 대비 21.1% 급증했는데, 이 대기업들의 종업원 수는 2018년 11만4000명에서 작년 14만7000명으로 29.4% 늘어났다.
한 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앞으로 한계기업이 폭증할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한계에 다다른 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다면 지금보다 사회에 미칠 파장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