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이미 결론 난 일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에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키코(KIKO) 배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자, 하나 같은 반응이다. 2013년 대법원 판결로 키코 문제가 마무리됐고,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10년)가 지난 현재 조정안을 수용하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 분쟁조정위는 2018년 5월 “키코 피해와 관련해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기업은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피해 기업들에 전달하고, 그해 7월 피해 기업 4곳에 대해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해 결론까지 냈다. 배상액수는 150억 원(신한은행)이 최고액일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분쟁조정 권고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금융권에선 ‘파격’이었다. 2008년 키코 사태 이후 11년 만에 나온 권고안이었다.
대법원은 키코 계약의 사기성은 부정했다. 그러나 일부 사안에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도 은행의 불완전 판매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분조위 결정은 대법원 판결에서 부인된 계약 불공정 및 사기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4개의 분쟁조정신청 기업에 대해서는 적합성과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은행들은 배임 등의 이유로 수용 결정 시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뒤 올해 7월 자율조정 일환의 은행협의체를 구성했지만, 구체적 배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이달 말까지 키코 자율배상 여부를 알려 달라고 시중은행들에 요청한 상태다.
키코 사태는 기존 대법원 판결과 소멸시효는 뛰어넘기 어렵다는 점과 금감원 분쟁조정의 비구속적 속성이 갖는 한계를 확인시켜 줬다. 어쩌면 금감원도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금감원의 행보는 의미 있다. 일각에선 금융지주와 정부의 관계를 읽지 못하는 등 ‘정무적 센스’가 없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소비자보호 신념은 끝내 지켰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교수 시절부터 “키코는 사기 상품”이라는 소신을 보였다. 금융위원회가 꾸린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 시절에도 “기업이 분쟁조정을 통한 피해구제를 요청하는 경우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와 재발 방지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제 키코 사태는 마지막 절차만이 남아 있다. 자율 배상을 위해 꾸려진 자율협의체에서는 상생 기금 조성도 하나의 방안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법적 책임에선 자유롭다고 외치지만, ‘도의적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키코 피해 기업 관계자는 “은행들이 배상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법원 공탁금 등 피해자에게 전달할 방안은 찾아보면 된다”며 “키코 사태가 마무리된다면 은행들의 평판 리스크도 회복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