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주식은 ‘빚투(빚내서 투자)’.
최근 금융 고객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신조어다.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로 대출금리가 바닥을 치자, 신용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기현상을 담아내는 말이다. ‘6·17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규제 강화 가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이번 기회에 집을 사려는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도 일조했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불안감을 느끼고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정부의 부동산대출 규제에 막힌 주택담보대출 대신 상대적으로 느슨한 신용대출을 끌어다썼다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은 용처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패닉 바잉’이 늘면서 신용대출을 하려는 젊은 층이 꾸준히 지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급격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타격을 받은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자금 용도 대출도 무시할 수 없다. 실업이나 휴직, 단축영업 등으로 소득이 끊기거나 줄면서 은행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금융당국이 지난달 중순 과도한 신용대출 증가세에 구두경고를 날린 것도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막차’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신용대출의 상당수가 주식 부동산으로 흘러가면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순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기업대출이 48조6000억 원 증가하면서 은행의 신용위험가중자산은 50조 원 증가했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시장위험가중자산은 19조 원 증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위험자산을 산정하는 것은 예상치 않은 위험에 대비하는 것으로 시장변동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며 “예상보다 위험자산이 크게 늘었고, 코로나 상황에 따라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대출과 함께 가계빚 규모도 불어난 점도 부담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빚 비중은 2015년 72.6%에 불과했지만 2018년 81.0%, 2019년 83.4%로 치솟았다. 올해 2분기는 85%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로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가계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가계부채 부실화 우려는 한층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2분기에는 재난지원금 등 정부 지원으로 비경상적 소득 증가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에 근로·사업소득 감소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정부 지원이 종료되면 대출자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금융사의 건전성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위험을 인지하고 경고에 나섰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9일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전 금융권 신용대출 증가액이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이며 6월 이후 증가폭은 더욱 확대됐다”며 “금융회사 차원에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음날인 2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은행권, 특히 제2금융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관련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추가 대책 가능성을 높였다.
다만 정부로서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만큼 당장 대출을 죄기는 쉽지 않다. 적극적인 경기 대응을 위해서는 부채비율 증가도 불가피하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코로나 금융지원 기조에 부응해야 하는 은행들로서도 당장 대출 문턱을 높이는 데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이 주택 매매에 유용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은행들이 그 이상으로 자금 용처를 점검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생계자금으로 신용대출을 끌어쓰는 경우도 많은 만큼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되 급격히 대출을 죄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