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고용 상황도 개선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참석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확언이다.
당시 고용시장은 5월 정부주도로 폭등한 최저임금 적용 충격으로 음식·숙박업은 물론, 제조업 취업자도 11개월 만에 뒷걸음질 치며 고용 사정이 악화하던 시기다.
그는 “연말까지 고용 상황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고용 사정 개선은 경제의 회복으로 해석되는 것이 정상이다.
약 3개월이 흐른 9월 3일 한 인터뷰에서 장 실장은 “소득분배 개선 효과가 내년에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회복이 2018년 하반기 또는 연말에서 2019년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어 연말로 다가서고 있던 11월 1일 열린 당·정·청협의회에 참석한 그는 “경기 둔화나 침체라는 표현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근거 없는 위기론은 경제 심리를 위축시킨다”라고 강조했다.
당·정·청협의회가 열린 나흘 후인 5일 바른미래당은 “장 실장이 소득주도성장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경기회복 전망 시점을 하반기, 연말, 내년으로 계속 늦춘 것을 비꼰 것이다.
하반기든 연말이든, 그다음 해이든 회복만 했으면 좋았는데 불행하게도 경제지표는 그를 배신(?)했다.
2018년 연간 취업자는 전년보다 9만7000명 늘었는데, 이는 9년 만에 최저치였다.
2019년에는 개선됐을까? 숫자만으로 보면 연간 30만1000명 증가해 2년 만에 30만 명 대를 회복했다. 장 실장의 점괘가 다소 늦게 효력을 발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60세 이상 취업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난 반면 40대 취업자는 28년 만에 최대로 감소했다. ‘관제 노인 일자리’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굳이 재작년과 작년 일을, 그리고 현재 주중 한국대사로서 불철주야 국가에 헌신하고 계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오작동한 경제전망’을 소환하는 이유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정·청이 경제를 너무 쉽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정치와 달리 갈라치기로 얼버무려 내 편만 끌어안고 가기 힘든 분야다.
그런데도 최근 들끓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놓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8·4부동산 대책으로 과열된 부동산 매매시장이 진정되고 연말까지 전월세 시장도 안정될 것으로 예측된다”라며 “당정은 이번 종합대책이 안착할 때까지 인내와 끈기심을 갖고 부동산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8말9초’를 부동산 시장 안정 시점으로 전망했다.
물론 연말에, 이르면 9월 초께 나오는 부동산 통계지표를 놓고 “시장이 안정됐다”는 자화자찬과 “딴 나라 이야기하고 있느냐”는 지청구가 국회를 지저분하게 수놓을 게 확실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11% 정도 올랐다고 언급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아파트 가격의 중위가격 변동률 기준으로 현 정부 들어 57% 급등했다고 주장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충돌했던 것처럼 말이다.
경제는 객관적 통계(수치)로 평가되지만, 인간이 그 통계를 부정직하고 부정확하게 쓸 개연성은 충분하다.
미국 통계학자 캐럴 라이트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한다”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는 “통계는 술 취한 사람 옆에 있는 가로등과 같다. 빛을 비추기보다는 (취한 몸을) 기대는 용도로 쓰인다”고까지 일갈했다.
정책입안자와 실행자들은 경제 생활하는 국민의 피부가 돼야 한다. 아플 때 같이 아프고 추울 때 똑같이 추워야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있다. 통계 마사지로 “내 일 다 했고, 이를 못 느끼는 국민은 언론의 가짜뉴스에 속고 있는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놔 봐야 민심이반 속도만 빨라질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는 튼튼하다고 국민을 설득중인 정부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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