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해방일’ 개념이 있다. 국민 각자가 1년의 시작부터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하는 날이 끝나고, 이후부터 순수하게 자신이 갖고 쓸 수 있는 소득을 버는 날이다. 국세와 지방세를 합한 조세 총액을 국민순소득(NNI)으로 나눈 조세부담률을 연간 일수로 분할해 산출한다.
2019년 세금해방일은 4월 4일(자유기업원 분석)이었다. 1년 365일 가운데 93일째인 전날까지 일해서 번 돈 모두 세금으로 납부했다는 의미다. 2017년은 3월 31일, 2018년은 3월 29일이었다. 참고로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은 3월 28일,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은 3월 24일이었다. 이 지표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예측치의 계산이고, 국민이 짊어지는 부담에는 직접적 세금 말고도 공적연금과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반드시 내야 할 사회보장기여금이 더해진다. 합치면 실질적인 세금해방일은 훨씬 늦어진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을 종전 40%에서 42%로, 법인세는 22%에서 25%로 끌어올렸다. 세액의 10%인 지방세까지 따라붙는다. 2018년에는 종합부동산세율도 높였다. 이후 집값 상승과 주택공시가격 현실화,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까지 겹쳐 주택 관련 세금이 급증했다.
여기까지는 대기업과 고소득자, 집 부자들을 표적 삼은 부유세였다고 하자. 이른바 ‘로빈후드세’다. 중세 영국에서 탐욕스런 귀족이나 성직자, 상인들의 재산을 약탈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는 전설의 의적(義賊), 그 로빈후드다. 그러나 이 영웅담은 비극(悲劇)이다. 재산을 뺏긴 권력자들은 그것을 만회하려고 서민들을 더 수탈했다. 상인들은 로빈후드가 있는 셔우드 숲을 피해 먼 길을 돌았고, 많은 돈으로 군사들을 무장했다. 부담을 진 서민들의 고통과 가난은 더 심해졌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로빈후드 효과’다.
부유세는 매력적이다. 부자들로부터 세금 많이 걷어 가난한 내게 나눠주는 걸 싫어할 사람 없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 그들을 증오하고, 배고픔은 참아도 배 아픈 건 못참는 정서의 교묘한 이용이다. 하지만 부자와 서민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만들고, 부자를 때려 민심을 들쑤시는 건 포퓰리즘 선동의 전형이다. 정부는 부자 세금이 빈곤 구제와 사회적 연대의 강화, 소득재분배를 위한 것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만, 그런 효과는 검증되지 않는다.
반대의 증거만 많다. 1910년 부유세를 도입해 복지국가의 상징이 됐지만 2007년 폐지한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부자들의 해외 탈출로 세금을 매길 자산이 대규모로 증발됐고, 투자와 창업이 위축돼 실업률이 급증한 때문이었다. 누가 세금 많이 내자고 열심히 돈 벌려고 하겠는가. 개인과 기업의 이윤동기를 죽여 성장활력이 쇠퇴하면, 세수가 쪼그라들고 서민경제는 더 피폐해진다. 세금을 깎아주어야 세수가 늘고 국민 삶과 경제가 튼튼해진다는 게 옳은 답(아서 래퍼의 이론)이다.
이제는 부자 세금이 문제가 아니다. 이달 초 정부·여당은 종합부동산세법·소득세법·지방세법·법인세법 등 11개 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뚝딱 처리했다. 정부는 여전히 극소수의 부동산 부자들만 겨냥했다는 프레임을 우긴다. 눈속임이다. 1주택자 세금도 급증한다. 공시지가 시세반영률이 높아져 누구나 집을 사고(취득세), 보유하고(재산세·종부세), 파는(양도소득세) 모든 과정의 세금 부담이 가중한다. 중산층에 대한 세금 공격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아껴 집 한 채 일궜는데, 엉망인 정책이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린 뒤 세금폭탄을 퍼붓는다. 왜 그들이 불로소득을 노린 투기꾼으로 취급받고 징벌적 세금을 강요당해야 하나.
헌법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으로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산층들이 돈 모아 집 사는데 정부가 뭘 도와줬나. 그런데 약탈적 세금을 매긴다. 세금 우습게 보면 무서운 부메랑을 맞는다. “나라가 니꺼냐”라며 신발 던지는 시민들의 항변 가볍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등 돌리는 민심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