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량과 전기자동차 등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트렌드가 크게 바뀌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자국의 광대한 자동차 제조 기반이 우위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로 올해 닛산과 혼다를 합병시키려 했다고 1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합병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의 야심에 찬 합병 계획은 시작부터 좌초했다. 양사가 즉시 아이디어를 거절한 것은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혼란이 펼쳐지면서 논의 자체가 묻혔다고 FT는 설명했다.
신차 연간 판매량 약 480만 대로 일본 3위 자동차업체인 혼다는 최근 수년간 불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 움직임 속에서 소외돼 회사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고조됐다.
전 세계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막대한 지출 부담을 덜고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합병이나 제휴를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지난해 독일 폭스바겐과 미국 포드가 비용 절감을 위한 글로벌 동맹을 결성했으며 푸조 브랜드의 PSA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도 지난해 말 합병에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프랑스 정부가 닛산과 르노를 아예 합병시키려 하자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을 체포하는 방식으로 이를 차단했다는 평가다. 한 소식통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고문들이 곤 전 회장의 2018년 체포 이후 닛산과 미쓰비시 동맹이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인식으로 혼다와 닛산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닛산을 아예 프랑스 르노로부터 떼어놓은 다음 혼다와 합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병 아이디어는 양사 이사회에 도달하기 전에 반려됐다. 혼다 측은 닛산의 복잡한 자본구조를 이유로 합병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도 기존 동맹을 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아이디어에 똑같이 반대했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가 산업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닛산과 혼다 동맹을 추진했다고 꼬집었다. 양사가 신차 판매 규모는 비슷하지만, 비즈니스 모델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 합병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혼다는 고유한 엔지니어링 설계로 닛산 등 다른 업체와 공통 부품이나 플랫폼을 사용하기 어렵다. 이는 합종연횡의 가장 큰 이유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기술 측면에서도 닛산은 전기차 기술의 선구자이지만 혼다는 도요타와 비슷하게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