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각국이 국제적인 공조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물론 각국이 처한 의료 시스템과 역량의 차이로 인해 동일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겠지만 코로나19 발병 원인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마찰, 그로 인한 미국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선언 등 적잖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 아마도 백신이 개발된 후에 이의 사용 문제로 한바탕 대소동을 다시 치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도 이번 위기 극복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우리 상품의 수출이 급감하고, 여행 제한으로 호텔, 운수 등 서비스 업종의 소비가 급락하였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소비마저 크게 줄어들어 정부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고 유례없이 3차 추경까지 편성하여 기업의 부도를 막고 소비를 살리는 긴급 경기부양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분기 -3.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과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 미래 세대에 대한 지나친 부담 전가 등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위기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이해되지만 회복이 되고 나면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비용을 치렀는지에 대한 평가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인쇄공 출신이었으나 부단한 노력으로 미국 건국 헌법 제정에 참여하는 등 독립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의 자서전에 호루라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7세 때 어느 날 용돈이 생긴 프랭클린은 항상 갖고 싶었던 호루라기를 산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동전을 다 주고 비싸게 호루라기를 산 그를 형과 누나들이 놀린다. 분하고 억울하여 엉엉 울어버리지만, 이 일을 기억하면서 그 후 모든 일에서 절제하고 정당한 값을 지불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실제보다 비싼 값을 치르거나 핵심이 아닌 주변의 것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 당신은 호루라기 값을 너무 많이 지불하는(pay too much for the whistle) 불쌍한 사람이구나’라고 말했다 한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 개인이나 기업,정부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순간적인 충동구매로 인해 과도한 지출을 한 나머지 신용불량자가 된 개인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업 중에도 자기 몸집에 비해 과도한 인수합병을 추진하였다가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사례도 호루라기 값을 비싸게 치른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 경제도 2007년 발생한 금융위기 극복과 녹색성장을 명분으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이 아직도 환경, 비용 측면에서 정치적 논란이 거듭되는 것을 보면 호루라기 값을 비싸게 치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과거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절에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급적 비용을 적게 치르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소위 호루라기 값을 적게 지불하며 위기를 탈출하였다. 한 예로 1980년 경제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지만 강력한 물가안정과 긴축재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그 후에 소위 ‘저유가, 저금리, 달러화 약세’의 3저 시대를 맞아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당시와 국내외적 정치 사회적 여건이 너무나 달라 국민의 희생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상 시국을 벗어나기 위해서 적극적인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와 같은 비용 지불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단기적 대응에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출이 과도했다면 호루라기 값을 너무 많이 지불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시스템을 한 단계 높이고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그래야 경제가 정상화되었을 때 국가가 부담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어 호루라기 값을 제대로 치른 게 될 것이다. 심각한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이, 미래를 위해 제대로 호루라기 값을 지불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할 적절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