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주축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은 6일(현지시간) 미국 회계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중국 기업이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을 금지토록 하는 등의 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 권고안은 또 2022년 1월까지 미국 회계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이미 상장한 중국 기업이라도 상장이 폐지되도록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도 담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하순, 미국에 상장한 중국 기업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고 60일 안에 보고하도록 한바 있다. 미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중국 기업들로부터 미국 투자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므누신 장관을 주축으로 한 실무그룹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과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이 클레이튼 위원장 등이 더해져 권고안을 정리했다.
FT는 미·중 관계가 수 십 년 만에 최악인 상황에서 나온 이 보고서는 양국 간 마찰이 고조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과 기술에서 미국이 국가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중국 기업의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트럼프의 더 강력한 조치라는 것이다.
중국 기업의 감사 현황 감독은 미국의 오랜 현안이었다.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는 상장기업의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감사 법인을 정기적으로 감독함으로써 재무제표의 질을 담보해왔다. 그러나 미국 당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자국 감사 법인이 PCAOB의 감독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해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의 재무제표에 공산당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감사를 통한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보고서는 감사의 구체적인 방법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는 평가다. PCAOB가 중국 감사 법인을 감독할 수 없는 경우, 공동으로 작업하는 별개의 감사 법인에 감사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KPMG 등 4대 글로벌 감사 법인을 염두에 둔 대응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의 움직임은 미국 의회의 입법 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 미국 상원은 5월 하순 중국 기업을 겨냥해 미국에 상장하는 외국 기업에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외국 정부의 지배하에 있지 않음을 증명하라는 것 외에 PCAOB에 의한 감사 상황 점검을 의무화하고, 3년간 이를 거부한 경우에는 상장을 폐지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기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는 것에 트럼프 정권과 집권 공화당, 야당인 민주당이 손뼉을 마주치게 된 셈이다.
중국 측은 이미 손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 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SMIC는 2019년에 미국 상장을 폐지하고 지난달 중국판 나스닥시장인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커촹반’에 기업공개(IPO)를 했다.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게임업체 넷이즈와 인터넷 쇼핑몰 업체인 JD닷컴은 홍콩시장에 중복 상장했다.
다만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조치는 미·중 모두에 타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중국의 성장기업에 투자하기 어려워져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다. 특히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중국 기업의 자금조달 자문으로 수익을 올려왔는데, 앞으로는 규제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투자자 층이 두꺼운 미국에서 배제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SEC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에 대해 “규정을 준수하게 되면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도 “준수하지 않으면 상당히 큰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FT는 이번 권고안이 발효되려면 SEC가 규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좀 촉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시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