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희의 뉴스카트] '못난이 감자'의 가치

입력 2020-07-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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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2016년의 여름 프랜차이즈 업계를 뜨겁게 달군 브랜드가 있다. 가성비 열풍이 한창이던 당시 초저가를 앞세운 생과일전문점 쥬씨 매장은 대기 고객들이 늘 장사진을 이뤘다. 매장 수 역시 급속히 늘었고 그만큼 논란도 많았다. 낙과 논란도 그 중 하나다. 낙과란 자연재해로 인해 나무에서 떨어져 상품성이 낮은 과실을 말한다. 흠집이 조금 있지만 맛이나 가공식품으로 제조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낙과다. 그러나 낙과를 사용했다는 의혹은 쥬씨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쥬씨는 낙과를 사용하지 않음을 증명하느라 고군분투해야 했다.

만족할만한 상품이 반드시 만족할만한 원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억지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의류의 가치가 일반 직물로 만든 의류보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이치다. 낙과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과 품질에 만족할 수 있다면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몇 년이 지난 뒤늦게 해묵은 낙과 논쟁을 꺼내든 이유는 최근 화제가 된 이마트 '못난이 감자'의 흥행 때문이다.

하자가 있는 상품으로 취급받던 못난이 감자는 농가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소비자에게는 저렴하게 판매한 결과 소위 대박이 났다. 못난이 감자는 상생의 아이콘으로 부상했고 이마트는 착한 소비를 주도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이커머스, 편의점까지 제2, 제3의 못난이 감자를 발굴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형국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됐지만 오히려 상생의 거리는 좁혀진 듯하다. 낙과와 못난이 감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그 자체만으로는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요리나 메뉴로 만들 때는 ‘상품(上品)’이라 불리는 고품질 농산물과 큰 차이가 없다. 학창시절 어머니가 큰 마대 자루 하나를 집으로 가져온 일이 있었다.

자루에는 우박을 맞은 사과가 가득 들어 있었다. 트럭을 몰고 우박을 맞아 상품성이 떨이진 사과를 비료 값이라도 건지겠다며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던 농부가 안쓰러워 지나칠 수 없었다는 어머니의 변명과 함께 우리 가족은 한동안 사과를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다. 잼도 만들고 샌드위치에도 넣으니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낙과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다. 오히려 버려져야할 낙과가 가족의 소중한 먹거리로 다시 태어났으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쥬씨의 낙과 논란이 한창이던 때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원로급 대표를 만났다. 그는 “낙과를 쓰고 안 쓰고가 중요한가”라고 물었고 “상품성에 큰 문제가 없는 농산물이 버려질 위기에서 농가를 살리고 기업이 원가를 줄여 이를 소비자 혜택(저렴한 가격)으로 돌릴 수 있다면 모두가 이익인 선택”이라며 오히려 낙과를 수매하는 기업이 늘어나야 한다고 스스로 답했다.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 어떤 작물은 상품(上品)으로 자라겠지만 또다른 작물은 생육에 악영향을 미쳐 또다른 못난이 감자로 자랄 것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더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못난이 감자가 상품(上品) 못지 않게 인정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좁은 취업문은 더 좁아졌다. 못난이 감자의 가치를 인정해준 것처럼 스펙이 아닌 사람의 숨은 가치를 보는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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