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최저임금 수준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14일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8590원)보다 1.5% 오른 8720원으로 결정했다.
이를 월 단위로 환산(주 40시간 기준 유급주휴 포함, 월 209시간)할 경우 올해 대비 2만7170원 인상된 182만2480원이 내년 한 해 동안 적용된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93만 명~408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현재 시급 기준 8720원에 못 미쳐 해당 시급까지 임금 상승이 필요한 노동자들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인 1.5%는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지금까지 역대 최저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던 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으로 2.7%였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게 결정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영세사업자의 경영난 가중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9명)들이 제시한 금액이다.
이에 앞서 1일 근로자위원(9명)과 사용자위원(9명)은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으로 각각 1만 원(16.4% 인상)과 8410원(2.1% 삭감)을 제시하며 대립각을 보였다.
노동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유지를 최저임금의 두 자릿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코로나19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고려해 삭감을 요구했다.
이후 양측은 인상률을 조정한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여전히 인상과 삭감을 고수하면서 결국 공익위원들이 13일 '심의 촉진 구간'으로 8620∼9110원(인상률로는 0.3∼6.1%)을 제시하고, 끝내 14일 8720원을 표결에 부쳐 의결시켰다.
8720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0.1%),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0.4%). 근로자 생계비 개선분(1.0%)을 반영해 산정한 금액이라고 공익위원 측은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공익위원 측이 경영계의 손을 들어줬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속에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면 기업들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이는 결국 인원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즉 공익위원들이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비 개선보단 고용유지를 택한 것이다.
사용자위원 측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 고용유지를 위해선 최저임금 동결 또는 삭감이 필요하다는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공익위원 측에 강조하며 현명한 결정을 요구해왔다.
더욱이 1.5% 인상률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고려하면 사실상 동결 또는 삭감과 같다. 2018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단계적으로 확대돼 2024년에는 전액이 산입 범위에 포함된다.
근로자위원 측은 여러 차례 회의에서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산입범위 확대로 인해 인상 효과가 미미하다며 공익위원 측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었다.
노사 양측의 줄다리기 싸움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됨에 따라 고용부 장관은 내달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고시되면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내년도 최저임금 고시를 앞두고 노사 양측은 최저임금안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수 있고 고용부 장관은 이의 제기에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최저임금위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번에 의결된 최저임금에 반발하고 있는 노동계는 고용부 장관 고시 전까지 재심의를 요구하는 농성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 도입 역사상 재심의가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어 노동계의 요구가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