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아버지 통장, 도장을 보관하고 있던 형이 아버지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서 가지고 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상속인 중 한 명이 다른 상속인들 허락 없이 부모님 예금을 인출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이러한 일 때문에 재판을 받은 가족들 얘기가 언론에 보도됐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A 씨(83세)는 자신의 딸(52세)과 함께 아들 B 씨가 사망한 당일 은행에 찾아가 아들 B 씨 명의 예금 5억 원을 인출했다. A 씨는 예금거래신청서에 아들 B 씨의 이름을 쓰고 자신이 가지고 온 B 씨의 도장까지 찍었다. B 씨에게는 초등학생인 딸과 이혼한 전처가 있었는데, 초등학생인 딸이 B 씨의 유일한 상속인이었다. A 씨는 상속인도 아니면서 B 씨의 예금을 인출해 간 것이다.
B 씨는 사망하기 몇 달 전부터 의식불명 상태였다. B 씨는 사망하기 2달 전 아내와 재판으로 이혼했는데 이때도 의식불명 상태였다. 아내는 그 전부터 남편 B 씨와 별거 상태였기 때문에 B씨가 의식불명 상태인지도 모르고 이혼을 했는데 당시 B 씨의 변호사는 B씨가 의식불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마음에 괴로워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A 씨는 아들 B 씨가 의식불명 상태에 있을 때 B씨 명의 아파트도 처분했다.
A 씨는 B씨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자 B씨가 사망하면 B 씨의 재산이 전부 초등학생 딸에게 상속되고 그렇게 되면 별거 중인 며느리가 사실상 이 재산들을 다 가지게 될까 봐 이런 행동들을 한 것 같다. B 씨의 전처는 A 씨를 고소했고 A 씨는 재판을 받게 됐다.
A 씨는 배심원을 통해 재판을 받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배심원 7명 전원은 A 씨에 대하여 사문서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사기죄 유죄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 중 6명은 실형, 1명은 집행유예 의견을 냈는데 재판부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한 아들의 재산을 관리했다고 해도 사망 사실을 숨기고 예금을 인출한 것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윤리, 사회통념에 비추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A씨가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고령인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했다.
형법상 가족들 사이에 재산 범죄는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재산인 부동산 전체를 처분하거나 상속재산인 채권을 전부 변제받아 가지고 간 사건에서 우리 법원은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사망한 사람의 재산을 처분하거나 인출하기 위해 문서를 위조해서 행사한 경우, 이처럼 문서를 위조한 것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상속인 동의 없이 가지고 간 재산을 정당한 권리자인 상속인에게 반환해야 한다. 물론 함부로 가지고 간 사람 역시 상속인 중 한 명이라면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부분은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형이 아버지 계좌에서 돈 1억 원을 가지고 갔다면, 형도 상속인이므로 형은 자신의 몫인 5천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5천만 원을 동생에게 반환해야 한다.
망인이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망인이 아직 사망하기 직전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망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다른 가족들 몰래 함부로 예금을 인출해 가는 경우들도 많다. 이 경우에는 아직 망인이 사망하기 전이므로 상속인들 돈이 아니라 망인의 돈을 횡령하거나 절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형사적으로 책임을 지게 될 수 있고 가지고 간 돈 역시 반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