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 화학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이 생생히 숨쉬고 있다. 처음 이곳에 부임하여 생산 공장과 같은 장소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줄지어 있는 오토바이 행렬이었다. 마치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의 풍경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지식 기반 서비스업,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 콘텐츠 산업 등이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먹거리라고 하지만, 지난 60여 년 우리 경제를 받치고 있었던 제조업은 아직도 여기에 굳건히 살아 있다. 작업복 차림의 평범한 모습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서 나는 뜨거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자부심과 같이할 수 있음에 내 심장도 더불어 뛰고 있었다.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는 울산 앞바다에 나타나는 고래를 그물을 이용해 잡는 장면과 호랑이를 포획하는 장면의 그림이 있다. 전문가들은 그림에 표현된 육지 동물의 모습에서 암각화가 만들어진 시기를 수렵 채취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로 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7000여 년 전으로 추정되는 이 시기는 한반도에 우리의 조상이 들어와 살면서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농경 사회로 정착하던 때일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에는 집에서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보관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진보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수렵과 채취를 하던 사람들에게 농업은 새로운 산업 혁명의 물결이었을 테니까.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4차 산업혁명보다 더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는 신화와 구전의 설화 속에 이어져 오지만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증적 증거는 빈약하지 않냐는 의문에 이 ‘반구대 암각화’가 대답하고 있다. 그림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그것도 문명의 교체기를 의미하는 내용을 담은 그림을 남겨 둠으로써 선조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 수준의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심장 도시에서 느끼는 시간의 궤적이다.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울산에 오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때문에 기차도 비행기도 이용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차창 밖으로 봄을 흘려보내고 태화강 동쪽 끝을 지나 회사가 있는 아산로에 들어선다. 배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석유 화학 제품을 수출하여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던 자랑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남겨줄 수 있을까 하는 상념에 빠져든다. 선진국 진입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눈앞에 있고, 수많은 경쟁국은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금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면 시간은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누구도 지난 60년과 같이 시간이 흐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인구의 고령화,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 새로운 성장 동력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조정과 타협 능력의 부족!
젊은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느끼는 시간의 궤적은 남다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됐던 나의 시간과 달리 이들의 시간은 좀 더 복합적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난다. 새로운 시간의 주역인 이들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대로 일을 하고, 서로 연대하라는 미국의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젊은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연설을 인용해 들려준다. 앞으로의 시간은 이들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