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재추진을 직접 언급하고,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하는 등 '중재자' 역할에 다시 나섰지만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에서 잇달아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찾은 7일 "마주 앉을 생각 없다"며 북미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도 질세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카드를 다시 꺼내며 응전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이날 담화를 내고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사람들과 마주앉을 생각이 없다”며 북미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비건 부장관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사흘 전 담화에서 미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이 거론되는데 대해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며 "북미대화를 정치적 위기 극복 도구로 여기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권 국장은 특히 이날 담화에서 사실상 문 대통령을 겨냥해 ‘오지랖’, ‘잠꼬대’, ‘참견질’ 등의 표현을 써가며 중재자 역할론을 비난했다. 그는 최 제1부상이 담화에서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 중재의사를 밝힌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귀가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제 좋은소리를 하는 데만 습관 돼서인지 지금도 남쪽동네에서는 조미수뇌회담을 중재하기 위한 자기들의 노력에는 변함이 없다는 헷뜬소리들이 계속 울려나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제는 삐치개질 좀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 버릇 떼기에는 약과 처방이 없는듯하다”며 “이처럼 자꾸만 불쑥불쑥 때를 모르고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북남관계만 더더욱 망칠뿐이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런 북한을 향해 FFVD를 거론하며 압박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6일(현지시간) 비건 부장관의 한국과 일본 방문 계획을 발표하면서 "북한에 대한 FFVD 조율을 추가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심 추가 양보를 기대했을 북한에 되레 수면아래에 있던 거론하지 않았던 FFVD를 끄집어낸 것이다.
이렇듯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오히려 북한과 미국이 기싸움에 돌입하는 형국이 되면서 문 대통령의 '중재자론'은 더욱 입지가 좁아들게 됐다. 문 대통령은 대북 전문가들을 외교안보라인에 배지하며 북미대화 재개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양측이 입장을 바꿀 변곡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성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비건 부장관이 2박3일간의 한국 방문 일정 동안 깜짝 카드를 꺼내 상황반전을 시도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임에도 한국행을 강행한 비건 부장관이 '빈손'으로 왔을리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비건 부장관이 코로나 사태이후 해외출장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남북 및 북미 간 대화는 지속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