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된다.
정부는 21대 국회에서도 비준안이 처리 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국격 추락과 국익 훼손이 불가피한 만큼 반드시 연내 국회 통과를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조만간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정부는 비준되지 않은 ILO 핵심 협약 4개 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단결권에 관한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등 3개를 비준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해 10월 비준안과 비준을 뒷받침하는 국내 노동관계법(노조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및 병역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비준안과 개정안은 여야 간 이견으로 법안 심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못한 채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날 비준안 국무회의 의결에 앞서 정부는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안과 병역법 개정안을 지난달 30일, 이달 2일 국회에 각각 제출한 바 있다. 개정안에는 핵심협약 기준에 맞춘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 허용 △퇴직 공무원·교원의 노조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노조의 사업장 주요시설 점거금지 △4급 보충역 대상자에 복무 선택권 부여 등이 담겼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비준안 재추진 이유에 대해 "ILO 핵심협약은 전 세계 근로자라면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가장 보편적인 규범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부터 최근까지 국제사회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해왔으나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K-방역으로 높아진 한국의 국격을 고려할 때 핵심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자 선진국이 이행해야 할 당위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현재 ILO에 가입한 선진국, 개발도상국 등 총 187개 국가 중 약 80%(146개국)가 핵심협약 전체를 비준한 상태다.
무엇보다도 임 차관은 우리나라의 국익 훼손을 막기 위해 핵심협약 비준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변했다. 미 비준 시 우리나라가 '노동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얻는 것에 끝나지 않고 유럽연합(EU) 간 무역 마찰이 발생해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EU는 한국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분쟁 해결을 위한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했다. 현재 전문가 패널 설치가 완료된 상태다.
임 차관은 "전문가 패널이 한국의 핵심협약 미비준에 대해 FTA 위반이란 판단을 내릴 경우 EU에서 다양한 비관세 조치 등 무역적 조치를 통한 압박이 우려된다"며 "EU의회는 2017년 5월 한·EU FTA 이행보고서 채택 당시 한국의 핵심 협약비준 등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양자 간 교역 확대는 유보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FTA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전문가 패널 심리는 코로나19 여파로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이달 20일 스위스(심리 진행지)가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을 완화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비해 우리 정부와 EU는 심리 일정 시기와 방식을 논의 중인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전문가 패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비준안이 처리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 ILO 핵심협약 비준에 적극 노력했다는 입장을 패널 측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정부는 국회 비준이 연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총력을 다 할 방침이다.
연내 국회 비준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21대 국회에서 집권 여당이 법안 처리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과반 의석을 차지해서다.
다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기존과 변화가 없는 비준안에 대해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면 자동적으로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도 보다 강화돼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ILO 핵심 협약과는 상관도 없는 사업장 점거 금지, 단협 유효기간 연장은 ILO 협약 위반이자 명백한 노동개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 차관은 "ILO 핵심 협약 비준안과 개정안은 10개월 간의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현실을 반영한 균형 잡힌 결과물"이라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사의 의견이 한번 더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