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그가 회고록에 쓴 내용들은 아직도 살아 있는 비밀들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주제들은 대부분 민감하며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그 책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는 내용이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이 적의를 품고 11월 대선까지 출간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책을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그의 회고록은 현재진행형인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미국 정부뿐 아니라 상대국 정상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한 말들을 시시콜콜 폭로하고 있다. 읽기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 실정법 위반 여부를 떠나 위험하고 불편한 내용들이다. 무대 뒤에서 일어난 일은 무대 뒤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그것은 진실과는 다르며, 그래서 국민들의 알 권리와도 다른 문제다.
그는 현직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민감한 내용을 담을 회고록을 썼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극력 합리화하고 있다.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일한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회고록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한 예를 들면서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나 게이츠 전 장관은 2011년 7월에 장관직을 그만두었고 회고록은 2014년 1월에 출간되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2012년 미국 대선과도 충분한 거리를 두었다. 반면 볼턴은 2019년 9월에 국가안보보좌관에서 해임되고 나서 불과 6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올해 3월부터 책을 출간하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서 스스로를 규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직에서 취득한 기밀을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최악의 규율 해이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청문에 출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그의 해명도 수긍이 잘 가지 않는다.
그의 회고록이 기록으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그는 회의나 회담에서 나온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안보보좌관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나온 말을 꼬박꼬박 받아 적기보다는 회담의 전반적인 분위기,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 몸짓 등을 살피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 아무리 꼼꼼하게 적어도 실제 말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의도나 뉘앙스를 빠뜨리고 자세하기만 한 기록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은 생각뿐 아니라 기억도 주관적일 수 있다. ‘깨알’ 같다는 그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2000년 평양에 가서 ‘김일성(Kim Il Sung)’과 와인잔을 부딪쳤다고 한 부분은 오타일 수 있지만 그가 정말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게 한다.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의견들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에게 중책을 맞길 생각을 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할 생각도 있으나 그의 행적 때문에 의회 청문회 통과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기 생각만 하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인정어린 배려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을 통보하는 전화통화에서 “당신에게 백악관에서 제일 센 자리를 주겠다, 의회의 민주당원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관을 그의 책에서 단 한 번도 ‘대통령(President Trump)’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국가안보보좌관의 임무는 대통령에게 선택지를 제공하고 대통령이 결정하면 실행에 옮기는 것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강경일변도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종국에는 해고를 당하자 곧바로 자기를 임명해준 대통령을 해코지하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다. 그의 회고록은 그 일환으로 보인다. 정책 면에서도 그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가든 국제기구든 드잡이하고, 부수고, 때리자는 주장을 밥 먹듯이 한다. 그런 정책들이 타당한 것인지는 고사하고 지금의 미국이 과연 그럴 힘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정도의 책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