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가 ‘하우스홀드 워즈’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할 때, 그와 뜻을 같이하는 친한 친구인 헨리 모리에게 부탁해 쓴 산업안전에 관한 칼럼이다. 디킨스가 살았던 19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많은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하여 산업안전 확보를 위한 입법과 규제 강화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기업가들은 비용 증가를 이유로 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요 반대 근거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체 인구 혹은 노동자 수에 비해 매우 적다는 통계였으며, 따라서 산업안전에 대한 규제 강화는 과잉투자라는 논리였다. 규제 강화 반대론자가 자기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내세우는 산업재해에 관한 통계를 디킨스는 ‘죽음의 계산서’라 불렀던 것이다.
최근 노동자, 그중에서도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사망 뉴스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몇 년 전 구의역에서 작업을 하던 19세의 꽃다운 소년이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하였다. 그의 유품인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은 그 또래 젊은이들은 물론 자식을 둔 많은 부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 사고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독산역, 강남역, 성수역 등에서 이미 몇 번이나 일어난 유사한 사고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산업안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현장의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반발로 계속 입법에 진통을 겪던 중 2018년 말에 발생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비정규직인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이 개정안은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되고 올 1월부터 시행되게 되었다.
고용부의 ‘산업재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2001년 2748명으로서 근로자 1만 명당 2.6명꼴이었다. 이후 조금씩 줄어들어 2018년에는 2142명으로 집계되어, 근로자 1만 명당 1.1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킨스가 살던 시기 영국의 통계가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몰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19세기 중반의 영국보다 못했던 산업안전 환경이 이제 겨우 그 시대 영국을 추월한 셈이 되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부분의 산업재해로 인한 안전사고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수많은 규제와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이다. 돈과 인간 생명의 경중을 비교하여 따지는 것은 윤리적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지만, 현실 기업 세계에서는 이러한 계산법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산업안전과 관련한 기업의 리스크가 커지면 커질수록 기업은 스스로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산업안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이 스스로의 이윤 동기에 의해 노동자들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의 정착이 이루어져야 한다.
150년 전 영국 사회를 향해 내밀었던 디킨스의 ‘죽음의 계산서’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는 인용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