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연이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도 차세대 배터리 제조업체와의 협업으로 미래차 경쟁력을 키우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은 22일 LG화학 오창공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나 논의한 주요 내용은 장수명(Long-Life) 배터리와 리튬-황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배터리 기술이었다.
장수명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보다 5배 이상 더 오래 사용해도 성능이 유지되는 배터리다. LG화학은 장수명 배터리 개발을 위해 빅데이터와 AI 등을 활용해 축적된 배터리 소재 기술을 더 강화하고,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하고 분석해 최적의 상태로 관리해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내부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변경해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배터리다. LG화학은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산 공정을 활용할 수 있는 타입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자동차 업계는 앞으로 본격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특히 고성능ㆍ고효율 배터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대차는 2025년 전기차 56만 대를 판매해 수소전기차 포함 세계 3위권 업체로 올라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기아차는 지난해 2.1%였던 세계 전기차 점유율을 2025년에 6.6%까지 끌어 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양사가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직접 나서 LG화학과의 협력 관계를 한층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이번 만남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13일에도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당시 정 부회장은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기술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과 이 부회장이 사업 목적으로 만난 첫 사례였다.
배터리 업계는 두 총수의 만남이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에 벌어지고 있는 합종연횡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ㆍ기아차가 생산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일렉트릭 등에 LG화학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고, 현대차 최초의 전기차 플랫폼 ‘E-GMP’ 기반 모델 5종에는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를 납품하기로 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과의 만남은 고품질의 배터리를 확보하기 위해 공급처를 다변화할 필요성이 있는 완성차 업체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아가 전장 사업이나 차량용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더 범위가 넓은 시장에서의 협력을 위한 사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조만간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만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협력해 미래차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일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 등 3세 경영인은 실리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어 앞으로는 조인트벤처설립 등 다양한 협력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