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분석 기사에서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전쟁이 제로섬 게임으로 변하면 제3자가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 유럽 국가 또는 기업들이 미국을 빠져나가는 연구·개발(R&D) 혜택을 보거나 미래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비하려는 화웨이테크놀로지 등 중국 기업으로부터의 매출 증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 모두 첨단산업의 진수인 반도체 분야를 지배하기를 바라면서 상대를 제거하려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갈라서려는 욕구야말로 양국의 야망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오랫동안 반도체 산업 자급자족인 ‘반도체 굴기’를 추진해왔던 중국은 화웨이의 취약점이 노출됨에 따라 이 목표가 더욱 시급해졌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중국 공장이 외국기업을 위해 생산하는 분을 제외하면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서 중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에 육박한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산업은 이 수요의 약 14%만 소화할 수 있다.
즉, 미국은 기술적 우위를 지렛대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야망을 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새로운 규제를 도입, 자국에서 설계된 반도체 제조설비를 이용해 생산한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차단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화웨이 등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제조 중심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 등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와 KLA, 램리서치 등 미국 업체들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 부문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롤랜드 슈 애널리스트는 “아무도 미국 반도체 장비 사용을 완전히 멈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코웨의 크리스 산카르 애널리스트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당분간 미국 장비업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굴기 야심을 완전히 꺾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위험한 도박이라고 WSJ는 꼬집었다.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와 관련 공급업체에 화웨이를 배제하는 것은 수십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의미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화웨이 단 1개사가 세계 반도체 소비의 약 5%를 차지했다. 레노버나 샤오미 등 다른 중국기업도 반도체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다.
WSJ는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압박 강화가 예상치 못한 결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본이나 유럽 등에 본사를 둔 외국기업이 미국 규제 영향을 피하기 위해 미국 이외 다른 곳에서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미국 내 R&D 거점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전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업체마저 국내 사업을 재검토할지도 모른다고 WSJ는 전했다. 릭 월러스 KLA 최고경영자(CEO)는 “싱가포르와 이스라엘에 있는 제조 시설은 우리가 가장 적합한 위치를 찾고자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수단과 옵션”이라고 말했다.